평소 존경해오던 선배님은 42년여의 교단 생활을 정년하면서 제자들로부터 교육칼럼집을 봉정받으셨다. '다시 태어나 교사가 된다면'이라는 그 책에 수록된 '사모곡'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이 애절하고 가슴이 저려오는 시 한편이 어떻게 태어난 것인지 알아보니 선배님이 총각 시절 결혼도 하기 전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고 숱한 가난함 속에 7남매 키우시느라 고생만하시다 일찍 돌아가시니 효도한번 드리지 못한 것이 가슴에 사무쳐 사모곡이 탄생한 것이다.
선배는 다행히 어진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 어머니 대신 남동생 둘, 여동생 둘을 시집 장가 보내주고 부모노릇 하였으나 그래도 효도받지 못한 어머님이 그리워 가끔 벽에 머리를 치며 울며 어머님을 불렀다하니, 못다한 효를 생각하며 교단에 온몸을 받친 것 같기도 하다.
선배님이 학교장이 되었을 때 어버이날을 맞아 신문에기고한 '어머님 전상서'에서도 고백하고 있다.
"평생을 고생만 하시던 당신을 내 손으로 편안하게 모시겠다는 일념으로 선생님도 되고 이제 교장도 되었건만 당신은 뭐가 그리 급해 불효자식에게 깊은 한만 남겨주고 영영 떠나시고 말았소."
철들어 효도하려하면 부모는 이미 백발되어 기다리지 않고 짙게 공감이 가는 상황이다.이 세상 사는 중에 여러 가지 복이 있겠지만 부모가 계신 것 그중에서도 어머니가 살아계신 것은 최고의 축복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자애는 무엇으로도 살 수 없고 견줄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경지이기에
하늘이 정해준 나의 반려도 며칠 전 육순을 맞게 되었다. 시모님이 낳아주신 몸을 60년간 잘 지켜온 것이 한면으론 기적인데, 가장 깊은 축하를 해 준 사람은 친가 어머니 이옥자 데레사님이다. 사위 생일 전날 '반찬 몇 가지 해 놓았으니 와서 가져가라'는 전화를 주셨다. 직장 핑계삼아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사위가 그래도 건강하게 딸 옆에 살아주니 고마워서인지 당신 몸도 가누시기 불편한 85세의 고령이신데 그릇그릇 담아 놓으신 반찬통을 열어볼 때 눈물이 핑돌았다. 돌아본즉 양가 네 부모 중에 유일하게 어머니라도 살아계서 사위 생일을챙겨주시니 감격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새삼 생각하며 집을 나서는데 엄마는 살짝 하얀 봉투도 건네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 우리 사위 영원토록 건강주시기 원합니다. 어머니'. 삐뚤삐뚤한 글씨로 세로로내려쓰신 글에 안을 살펴보니 꽤 많은 돈을 넣어 주셨다. 당신 잡술 것은 아까워 천원 한 장 아끼시는 분이... 건강하게 아직까지 살아계신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나는 그만 흐느껴 울고 말았다. 때론 자식들은 불평을 일삼으나 어머니의 깊은 속과 지혜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직장에도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남편이 떠나 어린 두 아들을 잘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 언제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고 퇴근 후에는 인라인롤러 스케이팅을 타면서 건강을 지켜가고 남편있는 여인보다 더 부지런하고 예쁘고 활동적이다. 그가 홀로 자식들을 키워오면서 남편의 역할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이젠 아들 둘이 어머니를 살갑게 위해준다고 한다.
어떤 철없는 청소년들은 차라리 부모와 같이 살지 않으면 좋겠다. 심지어 죽었으면 무엇이든지 제 맘대로 할 수 있어 부모를 해치기도 하건만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자녀는 어떤 처지이든지 어떤 경우이든지 어머니의 존재를 인정하고 아픔과 시련을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그것이 인생이고 참 삶이다.
어머니 고운 얼굴에 새겨진 사랑의 주름을 어루만져 드리자. 어머니는 우리들 각 자의 삶에 하늘이 내려준 최고의 다이아몬드이다.
/박종순 회인초 교감,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