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눈] 노기섭 홍익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학과 교수
“많이 웃으면 건강하고 오래 산다”고 한다. 웃음은 그만큼 우리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웃음의 종류도 다양하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다가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조용히 웃기도 한다. 남들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짓기도 한다. 상대방을 조롱하며 조소를 짓기도 한다.
웃음이 우리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에 웃는 모양에 대한 표현도 많은 듯하다. 웃음의 종류 중에 미소라는 것도 있다. 미소는 소리 없이 입가에 빙긋이 웃는 웃음을 의미한다. 한자로는 작을 미(微)를 쓴다. 실소라는 단어도 있다. 실소의 의미는 한자로 잃을 실(失)을 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접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툭 터져 나오는 웃음이라는 뜻이 있다. 미소와 실소는 항상 같이 다니는 쌍둥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필자도 미소와 실소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5월의 생기로운 어느 날 캠퍼스에서 듣는 학생들의 웃음소리에 미소를 짓기도 한다. 호기심이 생겨 학생들의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그들의 자신감과 배짱에 실소를 짓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에 대해 어떤 미소를 짓고 있을까? 가끔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한 나에게 조용한 미소를 짓는다. 꼬인 일정과 복잡한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학생들과 마주하며 강의했던 나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인 셈이다. 반면에 그날 내가 학생들과 마주하며 했던 말과 태도에 문득문득 실소가 터지기도 한다. 아직은 서툴기만 한 표현과 민망한 이야기를 했던 것 때문이다. 미소와 실소 사이에는 늘 위로와 성찰이 함께 한다. 미소와 실소는 어찌 보면 우리가 ‘진심’을 마주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가정과 학교 밖에서도 미소와 실소, 그리고 그 경계에서 마주하는 진심을 수없이 보게 된다.
우리는 디지털 환경과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스마트 기기 속 수많은 사진, 이모지, 메시지들, 그리고 SNS에 넘쳐나는 행복하게 미소 짓는 얼굴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웃음이 진심에서 비롯된 것일까? 스마트폰 액정 너머의 사람들은 밝은 표정을 띠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종종 실소에 가깝다. ‘좋아요’를 누르고, 웃는 얼굴 이모티콘을 달면서도 마음속엔 무관심이나 불편함이 자리하기도 한다. SNS 속 웃는 얼굴 너머에는 무관심이나 피로, 외로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웃음조차 ‘좋아요’를 위한 수단이 되는 풍경은 우리를 실소 짓게 만든다.
AI는 이제 우리의 감정을 분석하고, 표정을 인식하며, 때로는 웃는 얼굴을 흉내 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정교한 알고리즘도 ‘진심 어린 미소’의 무게를 완벽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기술은 표정을 흉내 낼 수 있지만, 마음을 흉내 낼 수는 없다. 미소와 실소의 경계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도 틈틈이 통찰해야 한다.
미소는 공감과 배려의 시작이며, 실소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반성의 신호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와 인공지능이 그려낼 미래 속에서도, 진심 어린 웃음은 여전히 가장 따뜻한 인간의 언어로 남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미소를 짓고, 무엇에 실소하고 있는가. 웃음의 결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들여다보며, 늘 통찰과 반성의 마음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