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내 가계부채가 또다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4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2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28조7000억원에 달했다. 전 분기보다 13조원 증가한 수치로,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02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일견 증가 폭이 과거보다 둔화한 듯 보이나,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구조적 취약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단기적 수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지속 가능성과 금융 건전성 확보를 위한 종합적 처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가계신용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카드 결제대금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표다. 2023년 한 해 동안 가계신용은 41조8000억원, 2.2% 증가해 2021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증가의 중심에는 주택담보대출이 있었다. 4분기 기준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123조9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1조7000억원이 늘었다. 이는 부동산 시장의 완만한 회복세와 맞물려 여전히 ‘내 집 마련’ 수요가 금융시장으로 이어졌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그 자금이 은행권을 넘어 비은행권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은행 예금 취급기관, 즉 상호금융·저축은행·신협 등의 대출이 4분기 중 6조원 증가하며 반등세를 보였고,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7조원 증가해 역대 최대폭을 기록했다. 이는 은행권의 대출 규제를 피한 ‘풍선효과’로 해석된다.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 대출 수요는 더욱 느슨한 규제의 틈을 찾아 비은행권으로 몰리고, 이는 가계부채의 질적 악화를 일으킬 수 있다. 상대적으로 건전성 관리가 취약한 비은행권의 대출 비중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의 불균형 심화와 잠재적 위험 확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은 13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특히 금리 부담이 큰 신용대출에 대한 수요 위축이 뚜렷하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가계의 ‘건전성 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 생활비 부족이나 자영업자 유동성 위기 등이 심화하면서, 일부 대출 수요가 비제도권이나 카드론 등 고금리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4분기 판매신용 잔액은 2조4000억원 늘어나며 120조3000억원에 이르렀다. 이는 연말 소비 증가의 계절적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카드 결제에 의존하는 가계의 증가를 우려해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명목 GDP가 6% 이상 성장하면서, 가계신용의 GDP 대비 비율이 3년 연속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치상 비율의 안정화는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분모가 커진 데 따른 착시일 수도 있다. 절대액 기준의 가계부채가 지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부채 부담은 여전히 가계에 무겁게 남아 있다.
더욱이 7월 이후 주택거래 감소, 9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도입, 은행권 대출 관리 강화 등 일련의 정책적 조치가 일시적인 안정 효과를 보이지만, 이는 구조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가계부채의 근본적 원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부동산 중심의 자산 편중, 고정금리 확대 미비, 가계의 불충분한 금융교육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현실에서, 일시적 규제 강화는 ‘풍선효과’만 불러올 뿐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제 양적 억제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나, 질적 관리와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 우선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동시에, 비은행권 대출의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고위험 대출 비중이 높은 금융기관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정례화하고, 금융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거시건전성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청년층과 무주택자의 주거안정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을 확대함으로써, 가계가 과도한 부채 없이도 삶의 기본을 꾸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가계부채는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수도, 성장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적절한 수준의 부채는 경제활동을 촉진하지만, 과도한 부채는 경제 전체의 위험요인이 된다. 현시점에서는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면서 부채구조를 건전화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절실하다. 특히 저금리에서 고금리로 전환된 환경에서 가계의 재무건전성을 지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과제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