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에는 국내 주요 택배사들이 일제히 배송을 멈춘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택배는 물론, 그간 로켓배송으로 선거일에도 쉬지 않던 쿠팡까지 휴무 대열에 합류했다. 택배 노동자들의 투표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이번 결정은, 물류 산업의 강도 높은 경쟁 속에서 노동자 권리가 얼마나 쉽게 희생되어왔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쿠팡의 이번 조치는 상징성이 크다. 2022년 대선, 2024년 총선 등 과거 선거에서 대부분의 택배사가 휴무를 결정했을 때도 쿠팡은 정상 배송을 고수해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으로 선거일 배송 중단을 결정했다. 이는 전국택배노동조합 등 노동계의 꾸준한 문제 제기와 사회적 여론이 만들어낸 변화다.
헌법이 보장하는 참정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기사들에게 이 권리는 늘 ‘현장의 사정’에 의해 제약받아 왔다. 법적으로 선거일 근무를 금지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앞세워 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는 구조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사각지대를 낳는다. 업계 스스로 자율 휴무를 정하고 이를 확대해 나가는 것은 참정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이다.
이번 결정에 대해 일부 소비자들은 배송 지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신선식품이나 당일·익일 배송을 기대하던 이용자들은 하루의 공백이 체감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루의 불편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권이다. 투표는 개인의 권리이자 공동체 전체의 권리를 행사하는 일이기도 하다. 소비자 역시 이 권리를 지키는 연대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택배기사들에게 보장된 유일한 공식 휴일은 8월 14일 ‘택배 없는 날’ 단 하루였다. 그것도 법이 아닌 민간의 자율적 협약에 기반한 것이다. 장시간 노동, 열악한 처우, 부족한 휴식 등 오랜 기간 개선되지 않은 노동 환경 속에서 택배기사들은 쉴 권리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해 왔다. 그들이 최소한의 민주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번 조치에 사회가 함께 응답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택배 노동자들이 우리 일상을 지탱해 온 숨은 영웅임을 체감했다. 이들이 선거일 하루만큼은 국민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작은 실천이다.
‘택배 없는 날’은 단지 물류의 일시적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한 표의 권리와 그 가치를 함께 지키기 위한 사회의 선택이다. 이번 선거에서 시작된 이 변화가 일회성이 아닌 제도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민주주의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