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이재훈 시인·건양대학교 교수

서울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옥천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자마자 차창 밖으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해마다 오월이면 충북 옥천에서는 지용제가 열린다. 올해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한 허연 시인의 초대를 핑계 삼아 달뜬 마음을 맘껏 누렸다. 옥천행은 오랜만이었다. 옥천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을 이름에서 향기가 나는 듯하다. 향수의 옥천, 도리뱅뱅이와 올갱이의 옥천, 내겐 무엇보다도 정지용 시인과 문학 얘기가 지즐대는 옥천이다.

옥천역에 내리자마자 편의점에서 우산부터 샀다. 비와 함께 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시내버스를 탔다. 나는 낯선 고장에 가면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한다. 버스를 타면 그곳이 냄새와 소리와 그곳의 이야기가 들리니까. 

정지용문학관 근처에서 내려 지용제가 열리는 행사장까지 실개천을 따라 걸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로 시작되는 향수의 노래가 입가에서 절로 나왔다.

정지용의 '향수'는 모든 감각이 살아 숨 쉬는 가편이다. 고향의 정경을 노래한 시로 '향수'가 최고에 이른다. 실개천을 바라보니 동네의 모든 이야기가 수풀에서 소리를 내는 듯했다. 옛이야기는 크고 웅장하고 대단한 사람들에게서 나오지 않고 작고 소박하고 여린 서민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서민들의 이야기가 모여 역사가 되고 큰 물결을 이룬다. 실개천을 보면서 옥천은 또한 실개천의 고장이라고 생각했다.

지용제가 열리는 지용문학공원과 구읍 일원은 실로 엄청난 규모의 큰 축제 마당이었다. 이번 지용제의 이름은 '詩끌북적 문학축제'. 시와 책과 문학과 축제를 잘 어우른 좋은 네이밍이었다.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각종 체험부스 행사, 캘리그라피 전시, 전자현악 공연, 퓨전 국악 공연, 시민음악회, 시조창 경연대회, 학생 그림그리기 대회, 모더니즘 패션쇼, 뮤직댄스 페스타, 가수 박상철 등이 나오는 향수콘서트, 국제문학 포럼, 지용 코스프레 퍼레이드, 작가와의 만남, 정지용문학상 시상식과 시노래 콘서트 등등 수많은 행사들이 3박 4일 동안 펼쳐진다.

상설전시와 체험행사, 문학행사 및 공연행사가 펼쳐진 지역축제의 종합선물세트였다. 눈에 띄는 것은 문학을 매개로한 다양한 체험행사들이었다. 또한 미주 한인 시인들을 초청하여 문학상을 수여하고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생각하는 교류의 시간도 인상적이었다.

축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잔치여야 한다. 축제는 위로와 휴식과 기쁨의 시간이어야 한다. 문학을 넘어서서 지역의 문화유산과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라면 더 좋겠다. 그런 면에서 지용제는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축제의 장에서 놀고 즐기고 먹고 마시다가 문학의 향기를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큰 의미일 것이다. 지용제는 정지용문학관과 정지용 생가가 바로 근처에 있다. 정지용 시의 의미를 되새기고 생가를 둘러보며 시의 향기를 맡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우리 일행은 구경을 실컷 하고, 많이 먹고, 늦은 저녁 야시장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며 축제를 즐겼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의 한옥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문학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룻밤을 보냈다.

정지용문학상을 받은 허연 시인의 수상작은 '작약과 공터'이다. 작약의 고요를 알아채는 시간, 슬프고 아름다운 시간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붉은 작약과 정지용과 함께 한 옥천에서의 하루가 오랫동안 기억할 옛이야기 하나로 빛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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