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박성규 한의학 박사·예올한의원 원장
인간을 자연이나 우주에 비유하는 것을 우주 아날로지라 하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애용했다.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학’에서 인간은 소우주(小宇宙)라 했으며, 로마 세네카는 ‘자연 질문집’에서 수로는 정맥, 통풍로는 동맥, 지질학적 물질은 근육, 지진은 경련에 각각 비유했다. 이런 상관적 사고는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사를 관통하고 있다. 1687년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발표되면서 기계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과학 시대가 도래했고 우주 아날로지는 구미에서 배척됐다. 20세기에 이르러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세계관으로 라이프니츠가 재조명되기까지 우주 아날로지는 비과학 비합리로 치부됐다.
우주 아날로지가 원시 수준에서 머물다 환원주의에 패퇴한 구미와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발전을 거듭하여 보편성을 획득했다. 천인상응설은 우주 아날로지의 정교한 모델로서 사회 각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 재이설(災異說)의 배경이기도 하다. 자연 재해가 인사와 크게 상관없지만 지도층이 심신을 바로 하여 하늘의 자비를 구함으로써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재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아니면 인재가 더불어 폭증하고 범국가적 도덕적 해이를 불러 붕괴했을 것이다. 지금도 지도층에 대한 도덕적 기대 수준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동의보감’에서는 “천지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 둥근 머리는 하늘에 닮았고 네모난 발은 땅을 닮았다. 하늘에 사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하늘에 육극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육부가 있고, 하늘에 팔풍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팔절이 있다. 하늘에 구성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구규가 있고, 하늘에 십이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십이경맥이 있다. 하늘에 이십사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스물네 개의 수혈이 있고, 하늘에 365도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365개의 골절이 있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고, 하늘에 밤과 낮이 있듯이 사람은 잠이 들고 깨어난다. 하늘에 우레와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희노가 있고,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이 있다. 땅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나듯 사람에게는 모발이 생겨나고, 땅속에 금석이 묻혀 있듯이 사람에게는 치아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사대(四大)와 오상(五常)을 바탕으로 잠시 형상을 빚어 놓은 것이다”라 하였다.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뤄 서로의 생존을 의탁하는 것이 천인상응설이다. 금세기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인 환경은 천인상응설을 강령으로 해야 한다. 인간을 중심으로 가꾸어야 하며 맹목적이거나 이권에 얽힌 자연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지리산에 방생한 반달곰은 조만간 주변 인가나 등산객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다. 특정 어종을 보호하기 위해 물길을 튼 결과 캘리포니아는 가뭄과 화재에 더욱 취약해졌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곰이 멸종한다고 선동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번성하고 있다. 매년 독사 피해가 늘어나고 있고, 자연 보호 명목으로 방해했던 케이블카 사업은 등산객으로 신음하던 산천을 되살리고 있다.
자연 자체에 매몰되면 인류의 생존은 위협받게 된다. 작금의 환경운동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거대 담론보다는 단편적이거나 근시안적 주장을 반복해 왔다. 선한 의견이라도 신념화되면 이성과 합리는 배제되고 일방적 주장만 난무하게 된다. 수천 년 조상의 지혜가 담긴 자연관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루어 개인의 안녕과 건강을 도모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