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6월 셋째 주

1975년 6월 19일자 3면.
1975년 6월 19일자 3면.

△19일 - 상업·오락 영화에 부정적이던 그때

TV 드라마도 영화 뺨치게 나오는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약간의 노출·폭력만 보이면 '유해물'로 취급을 받았다.

이날 3면 머리에는 '不法(불법)광고물 亂立(난립)' 제하의 기사가 올라가 있다.

'도시에 난립하는 불법불량광고물은 날이 갈수록 더해 보는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여전히 불결하기 짝이 없는 광고물은 어린이 정서교육에도 지장을 준다는 시민들의 비판에(당시 표기대로 옮김) 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소음 등 각종 공해에 시달리는 도시민들에게 새로운 공해로 등장하고 있는데도 당국은 이를 시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淸州市內(청주시내)에는 허가난 지정벽보판이 50개소가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지정벽보판에는 영화프로만이 독차지하고 있으며 이 선전프로가 노골적인 성적자극을 주거나 총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장식되어 있고 똑같은 프로를 줄비(역시 지면 표기대로임)하게 붙여놔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다. (중략) 한편 淸州경찰서는 영화프로의 경우는 중앙에서 검열받은 것으로 시정시킬 수 없으나 벽보판 외에 광고물 부착과 불결한 사용 등은 강력 시정하겠다고 밝혔다'는 내용이다.


△20일 - 다시 고개드는 도굴

역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기사 '다시 고개드는 도굴'이 이날의 3면 주요 기사로 자리하고 있다.

본문은 '근래 단속이 이완된 틈을 타 호리군(지면 표기 그대로 옮김)들은 도내 주요 유적지 고분 성지(城址)를 찾아다니며 값진 문화유산을 마구 캐가고 있다. 도굴범들은 또 장비까지 동원, 마을 주민들에게 대학에서 왔다고 속여 유지를 파헤치는 지능적인 숫법(역시 지면 그대로)을 사용하고 있어 이에 대한 당국의 근복(근본의 오기로 보임)적인 방지책이 아쉽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토요일 忠北大博物館(충북대박물관)학술조사팀이 淸原郡文義面(청원군문의면)가호里(리) 일대의 大淸(대청)댐 수몰지역 답사에서 그동안 학계가 주목해온 지석묘 1基(기)가 며칠전에 도굴당한 것을 발견했고 문의面里(면리) 일대 고분군 50여기가 도굴당한 것으로 확인함으로써 노출된 것이다. 또한 본지 취재반은 槐山郡(괴산군) 칠성面 외사里 寺址(사지)에서도 도굴군(지면 표기임)들이 지뢰탐지기를 갖고 와 주민들에게 대학에서 나왔다고 속여 사지를 파헤쳐 유물을 도굴해간 것(住民(주민)들 얘기)을 확인했고 中原郡(중원군) 금가面 속칭 궁골 고분군도 거의 뚜껑이 열린 상태를 발견한 것이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들 도굴군들은 쇠꼬챙이와 삽, 지뢰탐지기를 가지고 주로 인가가 떨어진 고분군을 파헤치고 있는데 마을주민들에게 들키면 『학술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판다』고 속인다는 것이다.(하략)'로 요약된다.

국내 고미술품 시장의 흑역사라면 단연코 '호리꾼'을 들 수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나온 이 일본 은어는 도굴범을 가리키는 용어다.

총독부를 등에 업은 일본인들이 '굴총(掘塚·무덤을 파냄)'을 했고 그들의 하수인을 '호리'라 부르다가 우리말인 '꾼'이 덧붙어 나왔으며 도굴 물주는 일본인, 하수인은 조선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신홍균 논설위원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