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노란 유채꽃 흐드러진 모습을 상상하고 이른 봄에 유채 씨앗을 밭에 뿌렸다. 거름도 시원치 않고 비도 오지 않으니 배배 틀어진 유채가 바닥에 붙어있다시피 자라지 않았다. 보리나 마늘처럼 가을에 씨앗을 뿌리는 거라 했는데, 봄에 뿌려도 무방하다는 말에 시도해 보았지만 영 시원치 않았다. 마른 봄이 다 지나고 초여름 비가 오자 그럭저럭 푸르더니 가뭄에 콩 나듯 몇 송이가 누르스름하게 꽃을 피웠다. 한꺼번에 무리 지어 피지 않으니 볼품도 없다. 올해 유채꽃 농사는 글렀다고 포기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제일 먼저 배꽃이 핀다. 배꽃은 구릉을 다 덮고 수 만 평 수북하게 피어올랐다. 배꽃에 취해 있던 며칠은 행락객처럼 마음이 달떴다. 한없이 바라보았다. 꽃 멍이다. 과수원 댁 석자 씨가 넉넉하게 웃으며 관람료 없는 꽃구경 실컷 하라고 여유를 부렸다. 풍경을 내어준 동네 분들에게 살갑게 인사하는 것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마정리 부녀회원들은 알록달록 예쁜 화분들을 길가에 심었다. 묵은 풀을 뽑고, 꽃모종을 심어 놓으니 땅값이 부쩍 오를 듯 동네가 훤했다. 동네 쓰레기장 주변에 더 많은 화분을 설치했다. ‘깨진 유리창 법칙’처럼 출퇴근을 하며 지나는 차 안에서 쓰레기 봉지를 던지다 보니 봉지가 터져서 쓰레기가 흩어졌던 곳에 화분을 놓고 잡초를 제거하니 꽃밭이 되었다. 더 이상 집안에서 가져온 쓰레기 봉지가 날아오지 않았다. 고라니 출입금지용 울타리에 색색의 화분이 걸리기도 하고, 비스듬한 언덕을 정리해서 꽃모종을 심어놓으니 마을회관 주변이 꽃동산이 되었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즐겁고 행복했다. 꽃은 그냥 꽃이려니 했다. 그런데 농사를 짓다보니 모든 먹을거리는 먼저 꽃으로 온다는 것을 알았다.

밭에 지천인 냉이를 삽으로 옮겨와, 뒤 곁에 냉이 밭을 만들었다. 내년에 그곳에서 수북하게 냉이가 자랄 것을 기대했다. 안개꽃처럼 냉이 꽃이 산들거려, 한 귀퉁이가 꽃밭이 되었다. 가을 국화처럼 생긴 쑥갓 꽃도 피었다. 노란 꽃송이가 제대로 무리 지어 꽃밭을 만드니 지나는 이들이 꽃 이름을 물어보기도 했다. 내년에는 더 잘 보이는 앞마당 쪽에 쑥갓을 심으리라 생각했다, 오이꽃, 가지꽃, 고추꽃, 호박꽃 참외꽃, 토마 꽃, 수박꽃, 텃밭에 심어 있던 모든 것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아침마다 그것들을 따서 식탁에 올리다가 유난히 보랏빛이 고운 가지 꽃 앞에서는 한참을 앉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면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 비 온 끝에 유채가 좀 더 피어나니 나비가 날아들었다.

입구 묵혀두었던 밭주인이 땅 호박을 심었다. 너른 땅에 호박 포기가 듬성듬성 있었는데, 출퇴근하면서 보니 푸른 잎이 마치 동물처럼 엉금엄금 밭을 기어가며 덮고 있었다. 제법 땅을 다 덮을 무렵에 호박꽃이 피기 시작했다. 거름이 좋은지 청록색 잎 위로 샛노란 호박꽃이 푸지다. 못 생긴 얼굴을 호박꽃이라 하는데 호박꽃이 얼마나 예쁜지 한번 찾아가 바라보시라. 사람을 만드는 어머니도 꽃부터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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