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박성규 한의학 박사·예올한의원 원장

1687년 뉴턴은 만유인력과 세 가지 운동법칙을 제시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발표하며 과학 시대를 열었다. 이후 과학은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까지 포섭하면서 오랜 세월 학문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뉴턴의 아성은 20세기에 이르러 상대성이론 불확정성원리에 의해 도전받았지만 과학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자연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인지한 과학계는 다양한 모델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우주팽창론, 빅뱅론, 초끈이론, 인플레이션론, 평행우주론 혹은 다중우주론 등 다양한 모델이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시됐다.

모델이 제시되는 것은 복잡한 우주를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지능력을 벗어나는 정도의 복잡성은 오판을 유도하여 나무에 집중하다 숲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한다. 복잡한 시스템의 경우 모델링을 통한 단순화로 실체에 보다 더 근접할 수 있다는 인식은 이미 70년대부터 각 분야에 퍼졌다. 사회 경제뿐만 아니라 공학에서도 이미 모델링 기법을 설계나 분석에 활용한 지 오래다.

인체는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므로 모델링 기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없다. 인체에 적용되는 모델링 기법을 인간관이라 한다. 양의학은 아직도 기계적 인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 타 분야에서는 다양한 인간관이 지난 세기부터 풍미했다. 심지어 칸트의 인간관도 여러 차례 재조명됐다. 한의학은 수천 년 동안 다양한 모델링 기법을 동원하여 인체를 분석했으며 누적된 인간관은 부지기수다. 원시성을 탈피하여 일반성을 획득한 것만도 여럿이다. 삼재설을 적용한 삼보론, 상생상극 원리를 활용한 오행론, 성쇠와 대대작용을 응용한 음양론, 오행론과 음양론을 합일한 음양오행론 등이 있다.

한의학적 인간관은 자연관과 마찬가지로 형질론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은 음양오행론의 태생적 모순을 바로잡은 ‘사대오상론’을 제시했다. ‘동의보감’은 인체 내부의 생리 병리를 설명한 ‘내경편’, 외형적 관점에서 생리 병리를 설명한 ‘외형편’, 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잡병편’, 한약재를 분류 정리한 ‘탕액편’ 그리고 침구에 대해 설명한 ‘침구편’ 등 전체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대오상론’은 내경편 전체에 전개되어 인체 내부의 생리 병리를 명확히 설명한다.

‘사람의 외형은 긴 것이 짧은 것만 못하고 큰 것이 작은 것만 못하며 살찐 것이 마른 것만 못하다. 사람의 색택은 흰 것이 검은 것만 못하고 옅은 것이 짙은 것만 못하면 엷은 것이 두터운 것만 못하다. 대체로 살찐 사람은 습이 많고 마른 사람은 화가 많으며, 흰 사람은 폐기가 허하고 검은 사람은 신기(腎氣)가 넉넉하다. 사람마다 형색이 다르기에 장부 또한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 비록 같더라도 치료법은 매우 달라야 한다.’

‘동의보감’ 강령인 ‘신형장부도’의 후반부 내용으로 형질론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한의학적 인간관은 인체를 전일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질병의 근본을 다스리기 쉽다. 비염에 대해 코나 폐만 문제시하거나, 두통에 대해 MRI CT 등으로 머리만 쳐다본다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증상만 완화하는 대증요법은 미봉책으로 화학약품의 부작용은 차치하더라도 질병을 더욱 키우고 정기를 손상한다. 양방에서 난치병으로 판정받은 상당수 환자가 한의원에서 치료되는 것은 한의학적 인간관의 우수성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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