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시급 1만 원이 갖는 의미를 종종 생각해 본다. 노동자가 고생하는 것에 비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미숙련 인력의 경우 1만원의 생산성을 해내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매장이 살아남으려면 생산성이 뛰어난 핵심 인력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뛰어난 생산성이 사실상 매장을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매장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역할은 해내지만, 생산성만 따졌을 때 자기 급여에 상응하는 몫을 다 해내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노동자도 많다. 그런데도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런 평범한 다수의 인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그들을 고용한다.
핵심 인력이 급여를 조금 더 많이 받고는 있지만, 그 능력에 비해서는 덜 받고 있고, 다수의 인력이 능력보다 많이 받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종종 해 본다. 인력을 고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을 업으로 하다 보니 가끔 '노동의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노동의 가치는 그 노동의 생산성일까? 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상품의 가격일까? 서민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만드는 일은 정말로 가치가 낮은 것일까? 인력은 귀한 존재고 그 값을 후하게 쳐줘야 하는데, 그 귀한 인력의 노력과 땀으로 만든 결과물을 비싸게 받으면 소비자들은 화를 내고 그 제품을 외면한다.
노동의 현장에서는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최근 음식값이 많이 올랐다고 아우성들이지만 대출 이자, 임차료, 전기세, 원부자잿값도 많이 올랐다. 잘되는 것처럼 보였던 매장이 갑자기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 남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급여가 넉넉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비싸게 느꼈을 것이다.
생산자는 싸게 팔아도 소비자는 비싸게 느끼는데 그 간극이 너무 크다. 우리가 칭찬하는 착한 가격의 착한 가게가 있다면, 어쩌면 충분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사장님과 근로자들의 놀라운 숙련도 덕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노동의 현장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젊어서 책으로 읽었던 노동에 대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보 근로자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떠오르는 단상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는 노사 합의를 거쳐 내년 최저시급을 올해 1만 30원보다 290원(2.9%) 오른 1만 320원으로 정했다. 지난 몇 년간 최저임금이 물가 상승에도 미치지 못한 실질임금 삭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찔끔’ 인상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번에도 ‘최저임금 인상률 억제용’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공익위원 심의 촉진 구간 내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때문에 민주노총 위원들이 중도 퇴장함에 따라 ‘반쪽짜리’ 합의로 끝났다. 17년 만에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돼 앞으로 정년 연장 등 노사 간 이견이 큰 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란 기대가 뒤따른다.
이번 결정된 최저임금 인상률은 ‘노동 존중’을 표방한 이재명 정부의 집권 첫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쉬운 측면이 크다. “이번 결정은 물가 인상률 등 객관적 통계와 함께 취약 노동자, 소상공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뤄졌다”라고 평가했다. 경기가 나쁘다는 점 등을 두루 고려한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본래 기능은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외견상으로는 노사 합의지만, 사실상 공익위원 주도로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상황이 재현된 셈이다. 언제까지 노사 갈등과 파행을 되풀이할 것인가?
비효율적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을 더는 미뤄선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올해와 같은 합의는 일회성에 그칠 것이다. ‘한 명의 노동자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 한 명이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성실히 일했을 때,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임금과 제도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선진국의 품격이고 국가의 책임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