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잊혀져가는 풍경 ⑤

-청주 육거리 시장 내 청송혼수


"솜이불에는 따스함 이상의 그 무엇이 있습니다. 시집보낼 딸 아이의 행복을 생각하며 정성을 다해 이불을 지으시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 포근한 목화솜 이불 한 채로 온가족이 따뜻한 겨울을 나던 때가 있었다.

요즘같이 쌀쌀한 가을이면 추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동네 아낙들은 여름 내 장롱 속에 넣어둔 두꺼운 솜이불을 들고 솜틀집을 향했다.

그러나 주거환경의 변화와 가볍고 관리하기 쉬운 화학솜의 등장으로 동네 골목마다 있던 솜틀집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1970~80년대 당시 청송혼수는 종업원 7명을 고용해 솜을 트는 작업은 물론 목화씨에서 직접 실을 뽑아 솜을 만들고 이불을 지었다.

한달 중 25일은 혼수를 맞추기 위해 손님들로 북적거렸으며, 창고에는 헌솜들로 가득찼었다.

솜트는 작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최용환옹(85)은 당시 7명의 종업원이 종사할 만큼 성황을 누렸으나 이제 모두 떠나가고 자신만이 30년째 솜틀을 지키고 있다고 회고했다.

청송혼수에서만 30년째 솜을 틀어온 최옹은 "목화솜이나 실크솜, 캐시밀론 등 7종류나 되는 솜마다 트는 방식도 제각각"이라며 "손으로 일일이 솜을 얇게 뜯어 8개의 솜틀 톱니에 고르게 물리고 솜통을 돌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최옹는 "예전에는 하루에 60kg 정도 솜을 틀었으나 요즘에는 거의 찾아 오는 사람이 없다"며 "자원의 귀함을 모르고 멀쩡한 솜들을 그냥 버리고 새이불을 사는 세태가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이영헌기자 smeyes@

한편 최옹이 근무하는 청송혼수(대표 안동권· 43)는 청주 육거리 시장에서 유일하게 남은 솜틀집이다.

37년째 육거리 시장을 지키고 있는 청송혼수가 호황을 누릴때 고등학생이던 안씨는 "아버지께서 목화씨 빼는 기계를 돌릴 때면 꼭 탱크 지나가는 소리 같았다"며 "기계를 돌리는 날엔 공부는 포기해야 했다"고 말했다.

한편 안씨는 "경북 청송이 고향인 선친이 청주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시작한 일이 이 솜틀집"이라며 "그래서 가게 상호명도 고향 이름을 따 '청송상회'로 시작해 지금의 '청송혼수'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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