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 박성규 한의학 박사·예올한의원 원장
19세기 초, 획기적인 연구로 과학 발전의 초석을 다진 영국의 돌턴은 원자론을 제창했다. 20세기 초, 보어는 이를 바탕으로 원자모델을 제시했고, 그의 사사를 받은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 등을 발표해 양자역학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20세기 과학을 대표하는 양자역학과 관련 그리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현대 원자론의 기원이라고 소개되곤 한다. 비록 원형이 유사하다고 해도 이천 년의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세아니아 지역의 고대 생활상이 고대 중국과 유사한 부분이 많으며 풍수지리에 대한 원형 또한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었다. 상당 기간 연구에 매진해 학문적 성과도 이뤘고 대학교수로서의 권위도 있었다. 하지만 고대 문명 간의 유사성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끝내 설명하지 못했다.
풍수지리는 살기 좋은 땅을 찾기 위한 노력이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한 것으로 원시 원형은 어디나 유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원시 원형이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문화 교류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천지인 삼재설은 자연을 관조하면 쉽게 떠오를 수 있는 생각이다. 이런 원시 모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단군신화’에서 보이는 환인 환웅 단군이나 오래된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삼성각은 모두 삼재설과 관련있다. 동아시아는 삼재설을 심화하여 자연이나 인체의 모델로 일반화했다.
고대 서양에서도 삼재설은 지중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생각은 기독교에 전파돼 삼위일체 사상으로 발전,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트리니티’라는 말이 구미 각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유다. 유사하다고 ‘삼재설’을 ‘트리니티’와 결부하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인간의 지혜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찰과 모방 등을 통해 축적 발전했다. 우리의 사고나 문명의 이기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관찰과 사고를 통해 생긴 직관과 영감은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문화나 문명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 모두 심화하지 않은 상태로 끝나기 때문이다.
원시성이 심화 발전하여 보편성 혹은 일반성을 획득하면 문화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가 다투어 다양한 사상을 쏟아 냈지만 동아시아 문명에 영향을 미친 것은 유가 도가 법가 등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럴듯한 생각이라도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으면 의미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의학은 인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수천 년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이론과 모델링이 명멸했으나 임상을 통해 검증된 몇몇만이 일반성을 획득하여 한의학 발전에 기여했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의 집요한 탄압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보건당국과 양방의 무수한 억압 속에서도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한의학의 치료 효과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수천 년 동안 검증되고 축적된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벼운 질환뿐만 아니라 난치병도 근본을 다스려 치료하고 있다.
반면, 양방은 과학 시대에 이르러서야 일반성을 획득하기 시작해 과학기술 발전에 편승한 가시적 진단으로 환자를 현혹하지만 정작 대증요법 외 치료법이 거의 없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한사코 막는 것은 유인 효과가 반감되고 상당 분야에서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구미 각국은 양의학의 한계를 인지하고 중의학이나 한의학을 도입한 지 오래다. 이제라도 보건당국은 한의학 말살 기조를 중단하고 한의학이 국민 건강에 좀 더 기여하고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