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이사

받아 놓은 날은 반드시 온다고 했던가.

일 년에 한 번, 친정 칠남매 모임이 있는 날에, 세 아들 가족도 함께하다 보니, 대박 난 맛 집 식당 못지않게 북적였다. 거실에서는 계속 상을 차리고, 밥을 먹은 사람들은 사랑채로 나가서, 한편에서는 술을 마시고, 한편에서는 윷을 던지며 놀았다. 해가 저물자, 마당에서는 텐트를 치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은 텐트가 바로 서기도 전부터 그 안에 들어가 까르르 웃고 뛰었다. 아흔이 넘은 친정어머니는 음식을 드시는 일보다 증손자들 노는 모습을 보시느라 방문을 열어젖히고 마당을 바라보셨다. 

밤늦도록 밥상이 새로 차려지고, 낮부터 술과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다락방에 올라가 잠을 자거나, 술자리 옆에서 대충 이불을 펴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음식을 잘하는 둘째 여동생이 계속해서 요리를 만들어 새로운 맛을 선보이는 동안, 우리는 열기가 식은 마당에 큰 테이블을 펴고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고기를 구워 먹고, 오리랑 전복이랑 문어를 넣은 백숙을 먹고도, 옥수수를 한 솥 삶아서 채반에 내놓으니, 또 손이 갔다. 달은 선명하게 반달 모양으로 밝게 빛났고, 숲에서 나는 풀 냄새, 한옥 격자 창호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처마 밑에 매달린 야외 등이 다정했다. 어머니와 아들딸들과 그 아들딸들이 마당을 가득 메웠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짧은 밤을 보내고 이튿날 점심까지 서른 명이 넘는 대가족이 먹고 떠난 마당은 솥단지며, 곰 솥, 채반, 스테인리스 양푼 등 큰살림들이 가득하다. 마당 설거지를 하는데, 온다던 비가 얌전하게 내렸다. 흙냄새가 올라왔다. 동기간들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 비가 거세지지 않기를 바랐다.

칠남매 행사가 끝나자마자, 반닫이 안에 넣었던 모시옷을 꺼냈다. 화문석 자리 위에 꼿꼿하게 풀 먹인 치마저고리가 곱게 펼쳐졌다. 우리 일행이 매일 번갈아 모시옷을 입고 맨해튼 거리를 나서기에도 충분한 듯했다. 출발일이 정해지고 항공권을 사고 나서부터 모시옷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임원 13명이 광복절에 뉴욕 맨해튼에서 열리는 ‘충남 방문의 해 홍보’를 하기 위한 행사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서천 한산모시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타임스퀘어에서 유관순 열사의 영상을 상영하는 행사에 우리 임원들은 단숨에 참석 의사를 밝혔고, 8월 8일 뉴욕방문단을 만들게 되었다. 호텔을 예약하고, 미술관, 센트럴파크, 나이아가라, 자유의 여신상 등 방문지를 선정하고 계획을 할 때마다 마음이 설렜다. 맨해튼 거리에서 모시 한복을 입고, 유관순 열사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도 입고 다니기로 했다, 행사 당일에는 모두 흰색 한복을 입기로 했다. 

뉴욕 한인회와의 만남도 예정되어 있으니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그래서 더 기대되는 그날이 이제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여행 가방을 펴고 하나씩 짐을 챙겨 넣으며. 그동안 기다리는 설렘에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린다. 풀 먹인 모시옷이 잠자리 날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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