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정연길 행정학 박사·전 충북보건과학대학교 교수
“이제와 내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세상이 떠미는 데로만 살아온 것이다. 무엇하나 내 의지대로 해본 것이 없다. 나라를 빼앗기고 성과 이름까지 버려야만 했던 세상, 무조건 잡아가도 항의 한 마디 못하고 죽은 듯이 살아온 세상, 무엇하나 순조롭지 못하고 재미있게 살아본 기억이 없다. 이게 다 배우지 못했기에 당한 것이란 생각이 들어 나는 자식들에게 재산은 못 물려주더라도 배움은 물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술도 없고 배움도 없는 사람은 언제나 어려운 세상을 남이 이끄는 데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배워야 한다. 내가 물려주고 싶은 교훈은 자식들에게 이것 밖에 없다.”
‘봇도랑 같은 나의 인생’의 책 내용의 일부이며, 그 속에는 평생 배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배워야 한다’ 라는 교훈이 담겨있는 책이기도 하다. 필자의 아버지인 정기호 님이 10년동안 쓰시고 둘째 제수가 정리한 것을 출판해서, 아들 삼형제가 아버지의 조촐한 팔순잔치에 그 자서전을 봉정했던 것이 2010년 12월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이 살아온 인생 역정을 글로 쓰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아버지가 칠순을 지낸 이후이었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시절 소학교를 졸업한 분이고 글쓰기를 배운적도 없는 분이기에 과연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 당시 가족들의 분위기이었다. 아버지는 10년동안 컴퓨터도 배우셨고, 컴퓨터를 통해 글쓰기 방법도 터득하셨고,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시대별로 컴퓨터에 저장해 놓으신 자료가 소설책 10권이상의 방대한 분량이었다.
아버지 자신이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한 한을 풀고픈 욕구도 있었지만, 자식들을 좀 더 넓은 세상에서 키워 보고 싶어서 제천 덕산에서 청주로 터전을 옮긴 것이라고 하셨다. 청주로 이사를 한 후, 부모님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가장 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농사와 외판업으로는 학비 조달이 어려워서, 지인의 도움으로 두부공장을 차려서 삼형제의 교육을 마칠 수 있음에 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 왔다고 하셨다. 그 자서전의 글속에서 아버지는 아들 삼형제를 박사로 키워 온 것을 늘 자랑스러워 하셨고 자부심도 대단하셨다.
아버지는 6.25에 참전했던 국가유공자로 국가로부터 참전명예수당을 받는 것도 미안해 하신 분이고, 최근까지 요양등급도 받지 않으신 분이기도 하다. 부모님을 어렵게 모셔야 했던 시절이고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 모든 희생을 감수하신 가장 힘든 일제 강점기 세대이자 부모님 세대는 국가나 사회, 가족으로 부터 모두 다 존경받고 칭송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살아오신 아버지가 지난 7월 29일에 95세 일기로 영면하셨다. 한 달전 낙상으로 인해서 수술 휴유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삼형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나는 내 나름대로 내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 왔다. 나는 봇도랑 같은 인생이었지만 자식들이 나보다는 좀 더 큰물의 인생이 된다면 무엇을 바라겠는가"의 그 책 말미에 있는 글귀가 나의 가슴 속을 맴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