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민족의 조상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으로 되어있다. 기원전 2000년에 아브라함은 그의 가족을 이끌고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방인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삭과 야곱은 부족을 형성하고 번성하여 가나안 지방에서 애굽으로 유목생활을 계속한다. 유태인은 애굽에서 처음에는 환영을 받았으나 폭군 바로 왕에 의해 노예가 된다. 여기에서 유태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등장하고 “출애굽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의 영도하에 극적으로 애굽을 탈출한다. 그 후 유태민족은 40여 년 간이나 광야를 방황한 끝에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 의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다시 찾게 된다. 그 후 유태의 여러 부족은 연합하여 왕국을 건설하게 되는데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 왕에 이르러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큰 성전을 건립하여 유태민족의 종교적 상징을 이루게 되나 그 성전을 외족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불타 버리는 운명을 겪게 된다.
유태민족은 바빌론의 침략을 받아 바빌론으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게 되지만 50년 후 바빌론이 페르시아에 정복되자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다시 건립하고 그들의 신앙을 지켜 나가는 끈질긴 집념을 보여준다. 그 이후에도 예루살렘은 알렉산더에게 정복되고 시리아의 침략을 받았으며 마침내 로마에 의하여 멸망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로마는 예루살렘을 점령한 초기에 유태인의 환심을 사기위하여 성전을 재건해 주고 종교생활을 보장해준다. 그러나 무거운 과세(課稅)에 시달린 유태인이 독립을 위한 항쟁을 계속하자 티투스 황제는 성전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에서 유태인을 추방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기원 70년의 일. 여기에서 유태인은 세계각지로 흩어지게 되었으며 나라 없는 이산생활(離散生活)을 시작하게 된다. 세계 각처로 흩어진 유태민족은 계속하여 이민족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민족적인 긍지를 잃지 않고 단결된 민족의 힘을 과시하여 왔다. 여러 면에서 유태민족은 우수한 민족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치스 독일에 의하여 6백만 명의 유태인이 무참하게 학살당한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유태인은 모두 합쳐서 1천 5백만 명. 그러니 6백만이라는 숫자는 가히 유태인의 멸족을 가져올 만큼 엄청난 숫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참혹한 박해 속에서도 그들은 유태인으로서의 당당한 긍지를 견지하고 있으며 그 민족적 단결력과 우수성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의 건국에 의하여서도 여실히 증명 되었다.
근 2천년에 가까운 세월. 세계를 유랑하던 유태민족은 그들의 나라를 그들의 종교적 발상지인 팔레스타인에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60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은 돌과 모래 밖에 없는 황무지를 푸른 옥토로 가꾸어 농업을 일으켰으며 공업화를 추진하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2억 이상의 아랍민족으로부터 수차에 걸친 침략을 물리쳐낸 용기와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불과 500만 밖에 되지 않는 적은 인구를 가지고 아랍의 계속적인 위협에 굴하지 않고 나라를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