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기후위기는 더 이상 ‘이상기후’가 아니다. 지구 평균기온, 해수면, 해양열 함량이 동시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2024년은 인류가 의존해온 안전의 전제가 무너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배경 기후가 뜨거워지고 바다가 팽창하는 한, 폭염·집중호우·열대저기압 등 극한 현상은 더 자주, 더 강하게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문제는 우리의 사회간접자본(SOC)이다. 도로와 교량, 철도와 지하공간, 댐과 하천, 항만과 상하수도는 대부분 “과거 기후가 통계적으로 변하지 않는다(정상성)”는 가정 위에 설계됐다. 그러나 최신 수문학(水文學)·기후 과학은 IDF곡선(강우강도-지속시간-빈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수학적 모델) 자체가 시간에 따라 이동함을 보여준다. 설계가 과거에 묶여 있는 동안, 극값은 위로 움직였다.
2022년 8월 8일 서울, 2025년 6월 14일 부산, 7월 17일 광주의 기록적 폭우는 그 현실판이었다. 100년 이상 자료를 넘어서는 시·일강우량이 도심 배수와 터널, 저지대 주거지를 순식간에 마비시켰다. 이 사건은 “100년 빈도”가 더 이상 100년답지 않음을 말해준다.
국제 설계기준도 변화 중이지만, 여전히 다수 하중이 과거 관측치를 바탕으로 한다. 공학계는 미래조건(기온 상승, 극한강우 증가, 해수면 상승 등)을 반영한 ‘기후 회복탄력형 코드’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는 설계 철학을 “정태적 안전율”에서 “적응적 설계와 단계적 증설”로 바꾸라는 요구다. 과학자들에 제시하는 해법은 기술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다음과같이 명확하다.
첫째, 국가·지자체 설계기준에 비정상성 IDF와 미래 하중 시나리오를 공식 반영하여 단일 빈도 대신 복수 시나리오 기반의 적응 경로(Adaptive Pathways)를 코드화해야 한다.
둘째, 교량·관거·지하공간 등은 수명주기 동안 단계적 증설이 가능한 모듈형·레트로핏 친화 설계 도입이 필요하다. 초기 CAPEX(Capital Expenditures)를 최소화하면서도 위험 상승에 대응이 가능하다.
셋째, 도시침수에 특화된 내배수 설계(대심도 저류·우수터널·침투 인프라 등)와 실시간 운영(펌핑·차수 등) 표준을 병행해야 한다.
넷째, 복합재해(Compound)를 상정한 설계·운영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올해 산청 사례와 같이 산불 후 토사·고형물 유입과 극한강우가 겹치는 경우 등 재난이 중첩되는 연쇄 위험을 코드·평가서에 의무 반영해야 한다.
다섯째, 재정·보험 시스템이 피해 복원력 투자를 뒷받침하도록 예산평가에 위험감소 편익을 제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5차 국가기후평가(NCA5)’나 ‘세계기상기구(WMO)’가 경고하듯, 지연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결국, 안전기준은 ‘과거 평균’이 아니라 앞으로의 위험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설계 강우 설계하중과 같은 이상기후 재난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준의 상향 이동을 인정하고, 기준·예산·운영을 미래 조건에 맞게 재설계하는 것이야말로 생명과 도시 기능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후 오송지하차도 참사를 언급하며 기존 방식과 시설, 장비, 대응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며, 관계 부처의 종합 대책을 주문했다. 단순히 주문에 그치지 말고, 국민 목숨을 지키기 위한 신속한 정책 수행이 이루어지도록 각별한 관심과 체계적 행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