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입추가 지나자 더위가 한풀 꺾였다. 마른 땀, 진땀 다 빠지도록 여름내 일만 하다가 모처럼 하루 시간을 내어 계곡으로 찾아들던 말복 날, 한기가 느껴져 차마 물속에 들어가기가 꺼려질 정도였다.

지난주부터 다시 더웠다. 이번에는 기온에 비해 햇빛이 강렬했다. 여물어야 할 세상의 열매에 달디 단맛을 주는 빛이라 고마웠다. 이 시기에 태풍이 몰려와 장마보다 더 심하게 수해가 나면 채소와 과일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비싸기만 하지 맛도 시들해 가을의 풍요를 느끼기보단 살림살이의 애환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낮 동안 더워진 시멘트 건물의 열기로 찬물을 뒤집어써도 더운 밤, 더는 매미의 울음이 들리지 않았다. 베란다 앞 은행나무 숲에서 잠깐 살던 매미는 동네 어린아이들의 손에 쉽게 잡히도록 정원의 야트막한 나무줄기에 간신히 매달렸거나 생을 다하고 길바닥 위로 흩어졌다.

매미의 생은 짧다. 몇 해를 흙 속에서 견디다 올라와 고작 몇 주 울다 간다. 문을 열어놓기가 망설여지도록 여름을 흔들던 수컷 매미의 암컷을 사랑하던 울음이 사라진 지금, 울음의 잔상이 남아 귀에 날을 세웠다. 짧았기에 더욱 그리운 소리이다.

암컷 매미는 여름이 되면 나뭇가지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알을 낳는다. 가지 속의 알은 그 자리에서 월동한 후 이듬해 봄에 부화한다. 알에서 깬 유충은 땅에 떨어져 흙 속으로 파고든다. 그 후 나무뿌리에 구침을 박아 나무 수액을 빨아먹으며 짧게는 3년, 길게는 13년가량 땅속에서 산다.

충분히 자란 유충이 땅 위로 올라오면 나무줄기나 벽에 몸을 고정하고 마지막 탈피를 한다. 날개가 달린 성충은 겨우 2주에서 한두 달 남짓 나무 위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남긴 것은 허물 뿐이라도 자기 권력과 욕망을 위해 탐욕을 부리는 자에 비하면 그 생은 순정하다.

생물학은 말한다. 한 집단의 동종교배가 반복되면 열성 유전자가 드러난다고. 비슷한 유전자만 가지게 되면 적응력이나 저항력이 떨어져 그 결과는 질병이나 기형으로 나타날 확률이 높다고. 과거 유럽 왕실의 근친혼이 ‘헴필리아’라는 유전병을 퍼뜨린 것도, 이 때문이고 결국 다양성을 버리고 품종의 특성을 유지하려다가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은 예다.

최근 동종교배의 해로움이 정치 세상에도 거론되고 있다. 내란으로 대통령이 탄핵 된 이후 급하게 치러야 했던 제21대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 선출 취소 공고까지 냈던 당이 전 당원 투표에서 반대 의견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야당이 되었다.

그 당이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다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시키는 거나 잘하라는 반지성주의 파시즘의 만연이다. 일개 미물도 자연스럽게 생명을 이어가는데 다른 목소리는 배척하고 자기들만의 울타리에 갇힌 채 생을 마치려고 한다.

동종교배에 갇힌 정치는 허물만 남기고, 매미의 울음처럼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울음을 기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뿐인데 그들만 그것을 모르니 딱한 일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