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안용주 전 선문대 교수
위대한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은 물체의 운동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다. 이는 질량을 가진 모든 물리법칙의 기본이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원리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제1 법칙인 관성의 법칙은 “정지해 있는 물체는 (그 상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외부의 힘이 작동하지 않는 한 계속 가만히 있고,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그 속도로 움직이게 된다”라는 이론이다.
러시아의 대문호(大文豪)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떠올리지 않아도 전쟁(戰爭)의 반대말을 물으면 대부분은 평화(平和)라고 답한다. 그러나 지난겨울 200여 개 국가 가운데 톱7이라는 G7 국가에 초대받을 만큼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뽐내는 대한민국에서 난데없는 비상계엄이 선포되면서, 우리의 일상(日常)을 몇몇 독재를 꿈꾸는 미치광이들에게 빼앗겨버렸다.
평생(平生) 나는 세 번의 일상을 강제로 빼앗긴 적이 있다. 대학에 막 입학했던 1980년, 군부독재를 꿈꾼 전두환이라는 희대의 악마로 인해 모든 대학에 폐쇄령이 내려지고, 강제 휴교령이 떨어졌다. 광주시민학살에 대한 대학생들의 데모(시위)를 차단하기 위한 꼼수였다.
두 번째는 중국에서 발견된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이후 코로나)로 인한 집회 금지였다. 대학에서 강의가 본업인 교수자에게 가장 중요한 학생들과의 대면 기회를 강제적으로 말살당했다. 공익(公益, public interest)이라는 이름의 강제조치였지만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일상을 빼앗긴 것은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입학식, 졸업식은 물론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경우 사망자의 존엄성은 물론 가족들의 추모에 관한 권리마저 외면당했다.
세 번째는 난데없는 한겨울 밤의 비상계엄령 선포다. 특검(특별검사, independent counsel)이 시작되면서 윤석렬의 비상계엄에 대한 민낯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결국은 부인(김건희)의 범법행위를 덮고 죄없는 군대를 동원해서 아프리카지역의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무력에 의한 독재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에서는 부패의 여왕으로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Imelda Marcos)가 꼽힌다.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이후 9년간 7만 명이 강제투옥되고 3만 4천명이 고문당했으며 3천 2백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코스의 장기집권 동안 부인 이멜다씨는 사치와 향락, 횡령 등으로 필리핀 경제를 거덜나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사치의 여왕으로 불린 이멜다 마르코스의 사치행각은 대통령직에서 쫒겨난 다음 발견된 3천여 켤레의 구두로 유명하다. 그녀는 8년간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적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남편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에는 보란 듯이 국가재정으로 명품들을 쓸어 담았는데, 명품 손가방부터 방탄 브래지어까지 사치품 목록에 기록되어 있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닌 일상(日常)이다. 윤석열의 대통령직 파면을 통해 우리는 다시 일상을 돌려받은 것이 가장 큰 위안이요 수확이다. 그러나 ‘관성’은 쉽게 떨쳐지지 않고 있다. 글을 쓰면서도 수없이 반복해서 읽어보고 생각한다. 행여 문제가 되어 고소나 고발이 들어오지 않을까 조바심이 생기는 탓이다.
스무 살에 마주한 베프의 죽음, 이어진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출가를 결심한 고려시대의 고승 나옹선사께서는 오도송(悟道頌)을 통해 이렇게 노래하셨다.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는 것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