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광장]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아들과 여수로 여행을 갔다. 아들은 중학교 3학년 사춘기 소년이다. 게임을 좋아하고 스마트폰을 종일 놓지 않는 반항기 가득한 아이다. 묻는 말에 “응”이라는 대답밖에 하지 않는다. 싫다는 표현을 할 때에는 “왜”라고 대답한다. 사춘기 아들과 둘이 여행을 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들에게 여행을 제안했을 때 뜻밖에 아들은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뜨거운 한여름에 서울에서 기차를 탔다.

우리의 여행지는 여수였다. 세 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여수박람회 건물에 있는 아르떼뮤지엄을 방문했다. 미디어아트를 제대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꽃향기가 실제로 퍼지는 것 같고, 바다의 파도가 내게 물결치는 것 같고, 동물을 만나고 꽃을 만나고 고래를 만나고 벼락이 치는 곳을 만나기도 했다.

배가 고팠다. 근처 맛집을 검색하여 게장백반으로 점심을 먹고 예약한 호텔로 이동했다. 테라스에서 여수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멋진 숙소였다.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루프탑에 있는 인피니티 수영장으로 가서 수영을 했다. 저녁에는 여수바다와 돌산을 오가는 해상케이블카를 타면서 여수전체를 하늘 위에서 구경했다. 저녁은 바닷가에서 돌문어 삼합을 먹었다.

다음날 아들은 배를 타고 싶어 했다. 우리가 예약한 크루즈는 승선인원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취소되었다. 어쩔 수 없이 동백섬기차를 타고 섬구경을 하기로 했다. 동백섬 근처로 가니 유람선이 금방 뜬다고 했다. 배를 탈 또 다른 기회가 온 것이다. 유람선은 여수바다 인근을 약 1시간 정도 천천히 돌았다. 바다에서 보는 동백섬도 아름다웠다. 아들은 새우깡을 사서 갈매기들에게 던져주는 놀이를 했다. 갈매기들에게는 못할 일이지만 이미 갈매기들의 주식은 새우깡이 된 것 같았다. 아들에게서 환히 웃는 표정을 보았다. 잠시지만 아주 행복해 보였다. 서울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기차에서 아들과 나는 내내 잠을 잤다.

생각해보면 여행 중에 아들과 나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별 말을 하지 않았기에 싸울 일도 없었다. 스마트폰을 한다고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몇 번의 다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여행은 평화로웠다. 그저 이동하고 구경하고 먹고 걸었다. 이틀 동안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들은 여행 중에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바다를 보며 풍경 몇 장을 찍는 게 전부였다. 조르고 졸라 나를 찍어준 몇 장의 사진만이 남았다.

아들에게도 울분이 있을 것이며 결핍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의 여행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면 그것으로 과분할 것이다. 동백섬에서 낭만포차거리로 걸어 나오면서 보았던 여수의 밤바다와 환히 빛나는 그날의 달빛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여 다음에 또 여행가자고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응”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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