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한옥자 수필가
수년 전 프랑스를 대표하는 도시 파리를 여행한 적이 있다. 런던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기 전부터 가이드는 거듭 말했다.
‘파리역에 도착하면 소매치기와 부랑자가 많으니 소지품을 잘 챙기세요. 역 주변은 냄새가 몹시 심하고 낯선 이가 다가오면 무조건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피부가 검은 사람은 대개가 불법체류자이거나 밀입국자, 불법 이민자일 확률이 높으니 더욱 조심하세요.’
실제 일행 중 누구도 험한 일을 당한 사람은 없다. 목적지에 잘 도착해 이튿날 아침부터 관광에 몰입했으나 만에 하나 벌어질지 모르는 만약의 경고는 여행 내내 긴장을 풀지 못하게 했다.
파리 여행은 기대와 달리 별로였다. 첫 방문지는 루브르 박물관. 다리가 아프도록 수많은 작품을 봤지만, 기억에 남는 작품은 단 하나. 진품이려니 믿어 의심치 않고 많은 인파 속에서 까치발을 띠고 찍은 ‘모나리자’ 그림 사진은 결국 신비한 미소가 담긴 온전한 사진은 단 한 장도 없고 바글거리는 키 큰 서양인들의 뒤통수만 더 크게 남겼다. 패션의 거리 샹젤리제는 차창 밖 조망으로 대신했고 파리의 상징 개선문은 서울에 있는 독립문보다 조금 크달까. 에펠탑과 센강도 딱히 감동이 없었다.
19세기 벨에포크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흐르는 곳. 그러나 몽마르트르 언덕도 생활전선에 뛰어든 치열한 삶터였을 뿐. 간혹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와 아코디언 선율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면 허름한 옷을 입은 연주자를 봐야 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그렇기는 마찬가지. 애써 내 안에 그리움을 밀어 넣으려 해도 손목에 강제로 팔찌 끈을 묶어주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잠시도 경계를 멈출 수가 없으니 예술을 본 것이 아니라 그리던 언덕에서 배고픔만 보았다.
낯선 이국의 풍경을 마주할 때면 경이로운 자극이 느껴진다. 흐릿하던 고국의 소중함이 새삼 진해지고 애국 의식도 슬쩍 성장한다.
그 경험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비상계엄 이후 6개월 만에 새 정부가 탄생했다. 지난 정부 3년, 무슨 일이 있었는지 3대 특검에 의해 점차 실체가 드러나는데 아직도 거짓 옷에 대한 미련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국민 통합은 쉽지 않다. 불법 이민자들 다루듯 쇠고랑을 채우는 나라를 탓하기보다 양비론으로 물타기 하는 특정 언론은 난동의 주범이 중국인이었어도 이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을까?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 발언과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그들이 내세운‘진짜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의 무게를 생각했다. 이 나라 최우선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대통령이 내세운 말은 부디 공염불이 아니길.
안심하고 숨 쉴 수 있는 나라,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진짜 대한민국’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