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난 17일과 18일 이틀간 청주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에서 라포르짜 오페라단의 ‘팔리아치Pagliacci’공연이 있었다. 2010년 청주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결성한 라포르짜 오페라단은 매년 수준 높은 정통 오페라 공연을 선보이며 지역 문화예술의 자부심이 되어 왔다.
이번에 라포르짜 오페라단이 선보인 ‘팔리아치’는 이탈리아 작곡가 루제로 레온카발로Ruggero Leoncavallo(1857-1919)가 작곡한 2막짜리 오페라로 1892년 밀라노에서 초연된 이후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광대들을 뜻하는 제목의 ‘팔리아치’는 유랑극단의 광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질투, 배신, 복수로 이어지는 인간 원초적인 감정을 강렬하게 담아내는 베리스모(Verismo사실주의) 오페라의 정수로 꼽힌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베리스모 오페라는 신화와 역사라는 전통적인 오페라의 틀에서 벗어나 시골 사람들, 유랑극단 광대,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 원초적이고 격정적인 감정을 무대 위로 끌어올려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극적 표현으로 담아낸다.
막이 오르기 전, 광대 토니오가 무대에 등장해 이 연극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삶의 이야기이며 광대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랑하고 고통을 느끼는 인간임을 알려주며 관객들을 공연 안으로 안내한다.
1막에서 이탈리아 남부 마을에 유랑극단이 도착하고 단장 카니오의 아내 넷다는 연인 실비오와 자유를 찾아 도망치기로 약속하는데, 그녀에게 거절당한 토니오는 질투심에 카니오에게 그녀의 비밀을 폭로하고 카니오는 넷다를 추궁하며 분노에 사로잡힌다.
2막에서 펼쳐지는 유랑극단 공연에서 팔리아초 역의 카니오는 차츰 연기와 현실을 혼동하며 극 속 상대역인 아내 넷다를 협박하다 그녀와 실비오를 칼로 찔러 죽이며 ‘희극은 끝났다’라고 외치고 막이 내린다.
‘팔리아치’의 여러 아리아 중에 가장 유명한 카니오의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Vesti la giubba”는 “의상을 입고 얼굴에 분을 발라라. 사람들은 돈을 냈고 여기서 웃기를 원하니까. 만약 아를레키노가 네 콜롬비나를 빼앗아 가더라도, 웃어라, 광대여... 그러면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내겠지! 격정과 눈물을 익살로 바꾸고, 흐느낌과 고통을 억지웃음으로 바꿔라... 웃어라, 광대여, 너의 부서진 사랑 앞에서! 네 마음을 독처럼 파고드는 이 슬픔을 비웃어라!”라며 아내의 배신을 알고 질투와 분노로 절망하지만 곧 바로 있을 유랑극단의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옷을 입고 분장을 해야 하는 광대의 처절한 심정을 전한다.
유랑극단 광대들의 사랑과 고통, 삶의 모습을 조명하는 ‘팔리아치’ 오페라에 다시 작은 액자로 도입된 광대들의 극중극은 현실과 극의 경계를 허물며 연극이 삶이 되고, 삶이 곧 연극이 되는 베리스모 오페라 특유의 감정의 광기 어린 폭발을 일으키는 파국의 기폭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