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과 도시가 함께 만든 응원의 거리
199.9m 담장에 새긴 26년의 기다림
야구장 향한 발걸음, 예술로 물들다
가을의 열기가 대전 도심을 달구고 있다.
한화이글스가 7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하며,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가을야구'의 환호가 울려 퍼진 것이다.
1999년 마지막 우승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대전 시민들의 마음은 다시 한 번 '오렌지 물결'로 물들고 있다.
이 뜨거운 열기를 예술로 담아낸 공간이 있다. 대전시 중구가 조성한 '야구장 가는 길' 벽화거리, 이름하여 '공담 1999'이다.
도시철도 중앙로역에서 대흥동과 은행동 상점가를 지나 대전한화생명볼파크로 이어지는 1.3km 구간 중, 오래된 건축물로 방치됐던 구간이 새 옷을 입었다. 무너진 담벼락과 낡은 간판 대신, 생동감 넘치는 벽화와 응원의 메시지가 팬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벽을 새로 칠하는 작업이 아니라, 지역민이 함께 만든 참여 예술의 결실이었다.
중단된 주택건설 부지를 가설 울타리로 감싸고, 지역 예술인과 상인, 주민이 함께 야구를 주제로 벽화를 완성했다. '공담 1999'라는 이름은 공이 담장을 가르며 뻗어 나가는 순간의 희열과, 누구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숫자 1999는 담장 길이 199.9m이자, 한화이글스가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해를 상징한다.
지난 12일 열린 벽화 완성식에는 대흥·대사·부사·문창동 주민들이 모여 한화이글스의 선전을 기원했다. 아이들과 팬들이 붓을 들고 직접 색을 입히는 순간, 그 벽은 응원과 희망의 메시지로 채워졌다.
'공담 1999'는 설치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벌써 시민들의 새로운 '포토존'으로 자리 잡았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SNS에는 '가을야구의 성지'라는 해시태그가 이어지고 있다. 야구팬뿐 아니라, 지나가는 시민들도 담벼락에 새겨진 글귀와 색감 속에서 지역의 온기를 느낀다.
김제선 대전 중구청장은 "이 벽화는 장식물이 아니라, 대전 시민의 열정과 한화 팬의 염원이 녹아든 상징적 공간"이라며 "이글스의 비상과 함께 지역 상권에도 활기가 돌길 바란다"고 전했다.
중구는 만약 한화이글스가 올해 우승을 차지할 경우, 담장 길이를 202.5m로 늘리고 이름을 '공담 2025'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는 물리적 확장이 아니라, 대전 시민과 팬이 마음을 모아 만들어가는 새로운 약속의 공간이 될 것이다.
야구의 열기, 예술의 색, 그리고 시민의 마음이 어우러진 거리. '공담 1999'는 이제 대전의 또 다른 명소로, 한화이글스의 가을을 빛내고 있다. /대전=이한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