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예술의 융합으로 인간 감정과 언어 재해석
세계 유일 여성 문자 '여서', 기술로 새 생명
창의성과 감성의 경계를 허문 혁신적 프로젝트

▲ 동일한 문장을 영어, 중국어, 여서(Nüshu), 그리고 AI 여서로 표현한 예
▲ 동일한 문장을 영어, 중국어, 여서(Nüshu), 그리고 AI 여서로 표현한 예

19세기 중국 후난성의 여성들이 억압 속에서도 자신만의 언어로 서로를 위로하던 '여서(女書)'가 21세기 인공지능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그리고 그 예술적 혁신이 세계 미디어아트의 중심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KAIST는 산업디자인학과 이창희 교수 연구팀이 영국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RCA)의 알리 아사디푸어(Ali Asadipour) 교수와 공동으로 진행한 프로젝트 'AI 여서(Nushu, 女?)'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디어아트 경연대회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Prix Ars Electronica) 2025'에서 디지털 휴머니티(Digital Humanity) 부문 영예상을 수상했다고 11일 밝혔다.

'AI 여서'는 문자교육에서 배제된 중국 여성들이 서로의 삶과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세계 유일의 여성 문자 '여서(女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다.

▲ 왼쪽부터 위 치엔 순 박사, 이창희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알리 아사디푸어 영국왕립예술학교 CSRC 센터장
▲ 왼쪽부터 위 치엔 순 박사, 이창희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알리 아사디푸어 영국왕립예술학교 CSRC 센터장

KAIST 연구팀과 RCA 협력진은 이 언어의 역사적 맥락과 상징성을 인공지능 학습 체계에 접목해,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미디어 설치 예술로 구현했다.

작품 속 AI는 전근대 중국 여성들의 서신과 노래를 학습해 스스로 새로운 언어를 생성한다. 이는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목소리를 빼앗겼던 여성들의 서사를 기술로 복원하는 동시에, 언어와 주체성의 경계를 탐구하는 시도로 평가된다.

▲ AI 여서(Nüshu) 설치 이미지
▲ AI 여서(Nüshu) 설치 이미지

올해로 46회를 맞은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매년 열리며, '미디어아트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릴 만큼 예술과 과학, 기술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만을 선정한다. 올해는 98개국에서 모두 3987개 작품이 출품됐으며, 이 가운데 단 두 작품만이 디지털 휴머니티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RCA 위 치엔 순(Yuqian Sun) 박사는 "삶과 연구 과정에서 수많은 도전이 있었지만, 여성의 언어와 기술의 결합이 세계적 무대에서 인정받아 깊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AI 여서 프로젝트 이미지
▲ AI 여서 프로젝트 이미지

KAIST 산업디자인학과 이창희 교수는 "이번 성과는 역사와 인문, 예술, 그리고 기술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며 하나의 사유로 이어진 결과"라며 "AI를 도구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되살려내는 예술적 동반자로 발전할 수 있음을 증명한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AI 여서' 프로젝트는 인공지능을 통해 여성의 서사와 언어의 다양성을 탐구한 예술적 실험으로, 기술이 인간의 표현과 기억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특히, 언어학·페미니즘·컴퓨터과학이 교차하는 융합적 접근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AI가 새로운 언어를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술적 맥락에서 제시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은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공식 홈페이지(https://ars.electronica.art/prix/en/digitalhumanity/)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전=이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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