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칼럼] 김헌일 청주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우리 집 중2 딸아이는 학원 교육 없이 학습지에 의존하여 공부하고 있다. 학습지 선택하기가 너무 어렵다. 오로지 공교육으로만 교육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으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교육방송공사 ‘EBS’에 의존했는데, 어느 날부터인지 EBS에 믿고 내 아이를 맡기기 어려웠다. 아이 때문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EBS 방송 곳곳에서 편향된 정치적 불편함이 느껴져서였다. 그런데 지난 9월 18일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EBS의 100% 노조 전원이 민주노총 산하 언론 노조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지난 내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민주노총은 강령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실현’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자본 중심의 현행 사회경제 구조를 개혁하겠다는 진보적/개혁적 지향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 민주노총은 남북통일 목표와 관련하여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 ‘연방제통일’ 등 북한의 주장과 일치하는 주장을 해왔다. 특히 통일선봉대활동 구호로 '한미워킹그룹 해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방위비분담금 폐지', '사드철회', '미군 진해세균부대 추방' 등을 촉구하였으며, 2022년 8월 15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는 북한 노동조합인 ‘조선직업통동맹’의 연대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학자인 칼막스(Karl Marx)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만들어진 구조적인 착취와 소외로부터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집단 조직적 계급투쟁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그의 가치는 ‘공산당’이라는 부패한 권력의 실패로 퇴색했다. 그러나 다른 측면으로, ‘제도경제학’의 대가인 존 커먼스(John R. Commons)는 자본주의 경제 내에서 필수적인 것으로서 노동운동이 단체교섭, 노조 활동 등을 통해 갈등을 제도화하고, 착취를 방지하며, 노동과 자본이 ‘폭력’이나 ‘계급전쟁’이 아닌 규칙하에서 협력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시장자유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모두 보호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무엇보다 노동자인 필자 역시 자본과 권력을 상대해야 하는 ‘을’의 입장인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노동운동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셀리그 펄먼(Selig Perlman)은 노동 운동이 의도적으로 정당 정치를 피하고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 시간 및 노동조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조직 혹은 강령 모두 정치체제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함으로써 이질적인 회원들 간의 단결을 유지하고 이데올로기적 분열을 줄일 수 있다고 하였다. 특히, 노동 단체의 정치적 성향이 회원들의 이익을 오히려 해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한편, 공영방송(公營放送)은 공정하고 사실에 기반한 정보제공을 우선하며,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때 권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유네스코(UNESCO)는 공익 미디어의 정치적 독립은 신뢰, 공정, 다원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필수 조건이라 했다. 권력은 공적 자금 지원을 통해 특정 이념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TV 수신료, 방송통신발전기금, 정부특별교부금 등 정부의 공적 자금을 받는 EBS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교육(敎育)은 민주적 역량을 증진하고 사회적 가치 형성을 담당해야 하지만 당파적 혹은 권위주의적 목적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며, 정치적 지배나 강압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교육은 이념적, 당파적 세뇌의 수단이 아닌 정의와 공정성을 위한 시민 시스템으로 작용해야 한다.
EBS는 한국교육방송공사(韓國敎育放送公社)다. 행여라도 우리 아이들을 특정 정치적 이념으로 물들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안전한 공교육만으로도 미래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노동운동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있을 때 교섭력을 높이고 비로소 구성원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EBS 노동자들이 특정 권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노동자의 참된 권리를 회복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