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눈] 김재국 문학평론가·에코 색소폰 대표
퇴직을 하고 음악실 문을 연 지 어느덧 3년이 되어 간다. 처음에는 단순히 취미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실은 나에게 또 다른 배움의 공간이 되었다. 처음엔 색소폰 레슨이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지도자와 학습자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으면 그 가르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음악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설렘과 긴장이 함께 묻어 있다. 악기를 처음 잡아보는 이도 있고, 젊은 날의 꿈을 다시 이어가려는 이도 있다.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이론이나 기교가 아니라 따뜻한 환대다. 그래서 필자는 연습보다 관계를 먼저 세우는 마음으로 사람을 맞이하려 한다.
기억에 남는 제자가 한 분 있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하자마자 색소폰을 배우러 오신 분이었다. 새로운 인생의 문턱에서 악기를 손에 쥔 그의 모습은 마치 두 번째 교단에 서는 사람처럼 진지했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고, 그 사이에는 하루 네 시간 이상씩 꾸준히 연습을 이어갔다.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 듯한 설렘으로 음악실을 찾던 그는 언제나 열정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는 색소폰의 숨결과 손끝의 움직임을 익혀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꼭 연주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곡은 송민도의 ‘나 하나의 사랑’이었다. 평생 자신을 위해 헌신한 아내에게 그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 말속에서 그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노래 가사처럼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라는 마음이 그의 연주에 그대로 스며 있었다.
그날의 연주는 단순한 곡이 아니라 사랑의 고백이었다. 색소폰의 음색은 그의 숨결과 함께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로 번져갔고, 악기의 소리가 멈춘 뒤에도 그 여운은 오래도록 음악실 안을 따뜻하게 감쌌다. 그의 열정은 단순한 기술 연습을 넘어, 나와의 신뢰 속에서 자라난 결실이었다.
성인 학습자는 어린 학생들과 다르다. 이미 삶의 무게를 겪었고, 실패와 이별의 기억도 품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훈련’보다 ‘공감’이다. 단순히 연주법을 교정하기보다 마음에 귀 기울일 때 배움의 불씨가 살아난다. 관계가 단단해질수록 학습의 속도는 오히려 빨라진다. 신뢰가 쌓이면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동기부여가 되고, 음악은 서로의 언어가 된다.
요즘은 새로운 회원이 오면 연습곡보다 먼저 커피 한 잔을 건넨다. 음악은 잘하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을 나누며,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마음을 전한다. 그 따뜻한 순간이 관계의 첫 음표가 되고, 음악실의 온도를 높인다. 결국, 레슨보다 관계가 먼저다. 관계가 음악을 성장시키고, 음악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이것이 내가 색소폰을 가르치며 얻은 가장 큰 배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