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채플린의 '라임라이트Limelight'(1952)는 잊힌 늙은 광대 칼베로와 삶의 의욕을 잃은 젊은 발레리나 테리가 서로를 격려하고 구원하는 과정을 통해 인생 무대의 세대 계승을 보여준다.

칼베로에는 당시 반공 이데올로기 광풍으로 미국에서 추방당해 있던 무성영화시대 코미디 배우 채플린 자신의 처지가 깊게 투영되어 있다. 영화 속 칼베로의 공연들은 작품의 핵심 메시지들을 상징적으로 전달하는데, 그중 성공한 테리의 공연 전 자투리 공연에서 칼베로가 선보이는 마지막 무대는 그 자체로 '라임라이트'주제와 작가의 삶의 철학을 응축해 보여준다. 

이 마지막 공연은 마임과 음악 연주가 결합된 인생 풍자극으로 칼베로가 거리의 악사 친구인 피아니스트와 듀엣으로 진행한다. 칼베로의 친구 피아니스트는 무성영화 시대의 또 다른 거장인 버스터 키튼이 연기한다. 이 무언의 음악 풍자극에서 그들은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실수투성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음은 맞지 않고,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흩날리며, 칼베로의 바이올린 현과 피아노 현들이 연이어 끊어지기 시작한다. 이 혼란스럽고 엉망진창인 준비 과정 자체가 칼베로 공연의 중요한 일부이다. 연주를 위해 오랜 시간 악기를 조율하는 모습에는 우리가 삶의 프로가 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아 모두 아마추어로 살다 간다는 칼베로의 철학이 녹아 있다. 

악기를 조율하는 도중에 칼베로의 한쪽 다리가 자꾸 줄어들고 그는 짧아지는 다리를 계속해서 털고 다시 빼내기를 반복한다. 다리가 자꾸 짧아지는 것이 우리를 주저앉게 하는 삶의 시련과 장애물들을 상징한다면, 그때마다 다시 다리를 빼내는 시도는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시련에 굴하지 않는 저항과 투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장면은 채플린이 평생 존경하였고 서로를 위로해 주었던 심각한 신체적 장애에 맞서 불굴의 의지와 혹독한 자기 훈련으로 재기한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에 바치는 오마주로서, 예전에 싸우지도 않고 굴복하려던 테리에게 투쟁 그 자체가 아름다운 인생임을 일깨워주던 칼베로의 격려를 상기시킨다. 

조율이 끝나고 연주를 시작하려는 순간, 조금 전 피아니스트 발에 끼어 망가져 버린 바이올린을 발견하고 두 악사는 멍하니 악기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칼베로는 뒤춤에서 여분의 새 바이올린을 꺼내 본격적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두 노 악사는 신나게 경쾌한 곡을 연주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곡조는 슬픈 가락으로 바뀌고 두 연주자는 동시에 팔에 고개를 파묻고 울기도 한다. 잠시 후 다시 그들은 신나게 연주를 이어간다. 때로는 안단테, 때로는 포르테, 다채로운 감정들의 변주 그것이 인생 연주다.

공연이 절정에 이를 때, 피아니스트는 의자에서 미끄러지고, 칼베로는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북 안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맨바닥에서도, 북 안에 실려서도 악사는 연주를 멈추지 않는다. 막이 내리고 라임라이트 조명이 떠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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