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회의 및 관련 부대 행사가 2일 모두 마무리되고 막을 내렸다. 국민적 우려를 사왔던 한미 관세협상이 지난달 29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주 국립박물관에서 APEC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진행한 한미정상회담에서 극적으로 타결된 것은 한국이 거둔 최대의 성과로 꼽힌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한중간 다양한 분야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고 정부 당국이 밝혔지만, 회담 후 공동성명이 나오지 않아 실질적인 소득은 미미하다는 관측이다.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당초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27일 공개된 미국 블룸버그 통신 인터뷰에서도 "협상타결 지연이 반드시 실패는 아니다"라며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겠디만 그것이 한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정도가 돼서는 안 된다"고 언급해 타결 불발에 확실히 무게를 싣는 분위기였다.
이재명-트럼프 오찬 정상회담에서도 관세협상 대미투자금 3500억달러와 관련해서는 일체이 언급이 없어 역시 물건너갔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나, 저녁에 김용범 정책실장이 브리핑에서 전격 타결 소식을 전했다.
핵심 관심사였던 대미투자금 3500억달러의 구성은 1500억달러는 미국 조선업 부흥(MASGA)을 위한 국내 조선업체들의 투자 및 지급보증으로 분리하고, 나머지 2000억달러를 10년간 매년 200억달러씩 현금으로 투자하는 내용이다.
김 실장은 200억달러는 한국이 외환시장에서 조달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상호관세는 25%에서 15%로 낮춰졌고, 자동차도 같은 수준으로, 반도체는 대만에 불리하지 않는 수준으로 각각 타결됐다.
대미 현금투자 3500억달러는 지난 8월말 한미정상회담에서 구두로 합의된 수치이지만, 추후 진행된 양국 실무자 협상에서 외환보유액 4200여억 달러 수준인 한국이 현실적으로 조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 교착상태를 지속해왔다.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되자 미국 측은 10월 중순께는 3500억달러 중 2000억달러를 매년 250억달러씩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간인 8년 동안 분할 투자하라는 수정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측은 관세폭탄 25%를 감수한다는 배수진을 치고, 매년 150억달러 이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고 계속 버텨왔다.
결과적으로 한미간 중간선인 매년 200억달러 현금 투자로 타결돼 한국은 최대 무역상대인 미국 시장을 지키면서, 5500억달러를 전액 현금투자하기로 한 일본에 비해선 크게 유리한 내용을 얻어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협상팀의 노력과 공로로 평가된다.
남은 절차는 양국간 합의된 내용을 문서화 한 합의서 서명날인과 나아가 양국 국회에서의 비준 절차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측은 합의서 작성과 서명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다.
대미 투자협정을 포함한 관세협상을 국회에서 조인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부 안팎에서 신중론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자를 실행하기 위해서 관련 법이 필요하다면 여당이 압도적 다수인 국회에 주문하면 된다. 하지만 관세협정 합의서를 국회에서 인준까지 받으면 스스로를 협상에 묶어두게 된다는 것이다.
협상 합의서는 국가간 조약과는 약간 다르다. 조약은 체결 당사국이 의회의 비준을 받아내야 효력과 준수 의무가 발생하는데 비해, 관세협상 합의는 양국 정부가 합의 내용을 실행하되, 언제든 양국 정부가 합의를 통해 합의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수정하거나 아예 합의 자체를 종결해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국회 비준 배제론'의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만료 후 다른 미국 대통령이 한미 관세협상 내용과 다른 무역정책을 전개할 수도 있으며, 그 경우 이번 합의서 내용은 양국 합의만으로 쉽게 폐기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한편 관세협상 타결과 함께 이번 APEC 정상회의 계기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대의 수확으로 꼽히는 핵잠수함 건조 및 연료 확보는 실행될 경우 한국의 해양주권 확보와 원양해군력 강화를 통해 군사 강국으로 크게 발돋움할 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구체적인 실행 합의안 도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이득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