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사색] 정우천 흥덕문헌연구소장

30년 살던 곳을 떠났다. 젊음의 대부분을 보내며 아이들을 키우고 내보낸 익숙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같은 도시에서 집을 좀 옮긴 것뿐인데도 심리적으로 꽤 심란하다.

내 집 장만을 못하고 직장을 따라 전전하던 젊은 시기에는 전셋집을 얻어 일이 년이 멀다고 이사를 했었다. 이사라는 게 금전적·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꽤 부담되는 행사였지만, 여러 번 하다 보니 군 짐도 별로 없고 나름 요령도 생겨 부담스러웠던 기억은 별로 없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희미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십 년 전이었던 80년대의 이사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저층아파트가 많았고, 옥상에 설치된 곤돌라라는 도르래 설비를 이용해 가구 등을 들어 올리는 이사가 흔했다. 나머지 짐은 계단으로 옮겨야 하니 육체적 부담이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 장독이 몇 개는 있었고 옮겨야 할 물건이 많으니, 지인이 총동원돼야 하는 일이 이사였다. 신문 구독을 노리는 신문사 지국과 영업을 위한 우유 대리점의 기웃거림은 흔한 풍경이었고, 시켜 먹는 중화요리는 이삿날 보이는 거의 필수적인 풍경이었다. 

요즘은 주거 형태도 바뀌어 사다리차 이용은 필수이고 포장 이사 등으로 간편해졌지만, 그래도 이사는 당사자에게 여전히 부담스러운 행사이다. 더구나 오랜만에 하는 이사는 군 짐이 늘어나 더 부담스럽다. 어느 구석에 쌓여 있었는지 꺼내놓고 보면, 세월과 더불어 온몸에 군살이 붙듯 묵은 살림이 산더미 같다. 집을 줄여 모양이 다른 공간으로 이사 가는 것이니 포장 이사라 해도 결국은 살 사람이 자기에 맞게 재배치해야 한다. 버릴 것을 결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뒷정리는 시간과 노력이 꽤 필요하다.

이사를 해야 버릴 것이 정리되고 살림이 정돈된다고 한다. 이사라는 게 사실 덜 필요한 것을 버리고 살림을 재정비해 다음을 준비하는 행위이다. 군 짐이 자꾸 늘어나는 이유에는 특별할 게 없다. 언제가 한번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자꾸 쌓아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은 어쩌면 내 삶에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고 나서 사시던 집을 정리할 때 그 사실을 절실히 경험했다.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고 아꼈던 짐이 사실은 그다지 대단하지도 않은 물건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버리고 나서야 확인했다. 

삶은 성장하며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날줄과 동시대의 시공간에 얽힌 인연들과의 사건이 만든 씨줄로 만들어진다. 떠나온 집에 남아있는 벽의 낙서와 귀퉁이에 흘리고 온 잡동사니처럼 내 삶의 한 부분을 그곳에 두고 이제는 새집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내 떠나온 그곳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고, 나는 어떤 이가 삶의 흔적을 두고 떠난 이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버리고 없애며 가벼워질수록 내 삶은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