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연풍면 곶감 덕장 오성태씨를 만나다
"허리·팔 성한 데 없어요… 감 한 알에 한 해 노력 다 있죠"
폭우·가뭄 이기고 깎고 엮고 매달기 반복에도 웃음꽃 활짝
"감 한 알이 입에 들어오기까지 허리, 어깨, 팔이 성한 데가 없어요."
가을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았던 5일 충북 괴산군 연풍면 한 마을의 감나무 아래에서 만난 농민 오성태씨는 웃음과 피로가 묻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씨를 비롯한 농민들은 며칠째 감을 깎고, 실처럼 엮고, 다시 매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정성스레 벗겨낸 감 껍질 아래 드러난 속살은 바람을 맞으며 점점 진한 색으로 익어간다.
잘 익은 감들이 떨어져 풀밭을 덮고 그곳에서는 은은한 술 향이 피어올랐다.
곶감 덕장에는 주홍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감들이 살랑이며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덕장에 서 있으면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향과 함께 '가을의 정수(精髓)'가 느껴졌다.
가지 끝 감을 고지 가위로 하나하나 따내는 일은 하루 종일 팔을 들어 올려야 하는 인내의 작업이다. 가지째 자르지 않으면 덕장에 걸 수 없어 손끝의 정밀함도 필요하다.
올해는 폭우와 폭염, 가뭄이 이어져 농사짓기 쉽지 않은 해였다. 그럼에도 가지마다 매달린 주홍빛 감들은 농부의 땀과 정성을 아는 듯 탐스럽게 익었다.
오씨는 "햇볕이 잘 들어야 하고 바람이 고르게 불어야 곶감이 제대로 마른다"며 "감 한 알에 한 해의 노력이 다 들어 있다"고 말했다.
덕장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은 감을 말릴 뿐 아니라 농민의 마음도 따뜻하게 덥힌다.
감이 점점 투명해질수록, 농민의 얼굴에는 안도와 미소가 번진다. 바람과 햇살,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함께 만들어내는 이 풍경은 그 어떤 화려한 가을보다도 깊고 고요하다.
덕장에 매달린 감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한 해의 결실이자 다음 해를 기약하는 약속이다. 괴산의 가을은 이렇게 농부의 손끝에서 익어가고 있다.
/괴산=곽승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