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움직임을 행정 정보로 전환
위기 징후 사전 포착 구조 설계
주민 중심 복지안전망 재정비
복지위기 대응 방식이 동구에서 조용히 다시 쓰이고 있다. 가장 먼저 변화를 감지하는 사람은 공무원이 아니라, 골목길을 걷는 집배원일 수 있다.
대전시 동구는 이 작은 사실을 단서로 삼아, 생활현장을 행정 구조에 연결하는 새로운 복지체계를 구축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11일 체결된 '복지등기우편사업' 협약은 기관 간 통상적 협력의 범주를 크게 확장하는 조치다. 우체국의 전국 배달망을 위기신호 관찰망으로 전환해, 행정이 파악하기 어려운 생활 속 변화를 조기에 포착하겠다는 전략이다.
동구는 전기·수도 사용 중단, 급격한 생활 패턴 변화 등 위험 가능성이 큰 가구를 추려 우체국에 전달한다. 집배원은 등기우편을 직접 전달하면서 현장에서 느낀 변화와 문 앞 상황, 응답 패턴, 주변 환경을 세심하게 확인해 구에 회신한다.
말 그대로 집배원의 발걸음이 하나의 정책 도구가 되는 셈이다. 대전우체국 선우환 국장은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직업적 특성이 이 역할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회신된 정보는 즉각 행정 절차로 연결된다. 구는 위기 완화 상담, 긴급 지원, 지역 자원 투입 등을 신속히 가동해 위험을 조기에 차단한다.
그동안 복지 행정은 신고·상담 등 '들어오는 정보'에 의존하는 구조였지만, 구는 이번 협업을 통해 행정이 직접 위험을 찾아 움직이는 체계로 전환하고 있다.
구는 이 원칙을 실제 제도에 옮겨 담았다. 행정조직이 놓치기 쉬운 생활 변화를 '현장을 매일 걷는 사람'과 연계하는 방식은 복지안전망 강화의 새로운 접근으로 평가된다.
박희조 동구청장은 "감지 속도를 높여야 보호 속도도 빨라진다"며 "생활권 전체를 하나의 관찰망으로 바라보는 복지구조를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위기 발생 뒤 개입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위험이 움트는 단계부터 개입해 악화를 막는 예방 중심 전략이라는 점이다.
문이 잠겨 있고, 우편물이 쌓이고, 생활 반응이 달라지는 사소한 요소들이 이제는 '조기 탐지 신호'로 활용된다.
이번 협약은 단발성 협조가 아니라, 우체국과 행정이 함께 생활 기반 사회안전망을 제도화하는 첫 단계다.
기술이나 데이터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영역을 '사람의 관찰'이라는 오래된 방식과 결합해 행정 구조를 혁신한 셈이다.
동구는 향후 위기 징후 분석체계 고도화, 추가 협업 분야 발굴 등 후속 작업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복지행정의 무게 중심을 거리로 옮긴 이 실험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전=이한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