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현수막과 노란 플래카드가 마주 선 거리
급식 파업 장기화, 교육청 앞엔 '말 대신 구호'
"노조도, 교육청도, 밥 앞에서는 멈춰야 한다" 외침

"아이들이 먹을 밥이 싸움의 무기가 됐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11월의 대전시교육청 앞. 가로수 사이사이, 분홍색과 노란색 현수막이 서로를 겨누듯 펄럭인다.

하나는 "무기한 파업 투쟁으로 교섭 승리", 다른 하나는 "아이 밥상 볼모 삼지 말라." 길가엔 말 대신 구호가, 대화 대신 분노가 걸려 있다.

▲ 대전시교육청 앞 도로변에 급식노조와 학부모 단체가 각자의 입장을 담은 현수막을 걸고 맞불을 놓고 있다. 왼쪽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대전지부의 현수막, 오른쪽은 학부모 단체의 대응 현수막
▲ 대전시교육청 앞 도로변에 급식노조와 학부모 단체가 각자의 입장을 담은 현수막을 걸고 맞불을 놓고 있다. 왼쪽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대전지부의 현수막, 오른쪽은 학부모 단체의 대응 현수막

급식노조는 "대화는 여기까지"라며 강경한 입장을 굳혔다. "부실 급식 모욕 참아가며 수개월 밥했다. 더는 못 참는다." 그들이 내건 문장마다 쌓인 피로와 분노가 묻어난다.

노조는 배식대 안전 개선, 복잡한 반찬 조리 금지, 손질되지 않은 해산물 취급 제한, 무급 초과근무 근절 등 20여 항목의 '노동 환경 개선안'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이 무너지면, 급식의 품질도 무너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같은 공간의 다른 방향에서는 아이들의 이름이 외쳐진다. "노조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줄 바엔 위탁급식 NO, 건강 밥상 YES." "노조라는 약자 프레임에 숨어 어린 학생에게 갑질하는 것이 정당한 권리인가?" 학부모들은 파업의 대가를 치르는 아이들을 걱정하며 교육청 담벼락 앞에서 맞불을 놓았다.

▲ “노조라는 약자 프레임에 숨어 어린학생에게 갑질하는 것이 정당한가?” “둔산여고 무기한 파업으로 부당노동행위 끝장내자!” 대전시교육청 일대 곳곳에 걸린 현수막이 갈등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 “노조라는 약자 프레임에 숨어 어린학생에게 갑질하는 것이 정당한가?” “둔산여고 무기한 파업으로 부당노동행위 끝장내자!” 대전시교육청 일대 곳곳에 걸린 현수막이 갈등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는 학교가 늘었다. 냉동식품과 간편식으로 버티는 급식실은 이미 한계에 닿았다. 학생들은 "급식이 안 나오면 수업이 이어지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밥상 위엔 식판 대신 공백이 놓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공교육 신뢰의 균열"이라 표현한다. 노동자의 권리와 학생의 권익이 정면으로 충돌했지만, 조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현장은 갈등을 중재할 교육청의 부재 속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한 학부모는 "아이 밥 앞에선 어른들이 멈춰야 한다"며 "교육청의 책임 회피가 갈등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의 학습권과 건강권이 쟁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법령 및 타 직종과 충돌하는 요구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본 교섭 재개를 통해 현실적인 해법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파업은 선화초, 가장초, 동명초 등 8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전의 교육 현장은 '밥상 위 전쟁'을 끝낼 대화의 테이블을 아직 차리지 못했다. /대전=이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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