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칼럼]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동시인
물감을 엎지른 듯 낙엽 몇 잎 뒹굴며 꾀죄죄할 때, / 휑한 나뭇가지로 이사하는 철새 / 뒷짐 진 바람 따라 귀 익은 노래 / 계절 퇴역식 내내 울림만 쥐고 섰다./ 필자의 시 ‘가을 끝자락’ 중간 단락이다.
1년 6개월 동안 쓰기를 멈췄다. 본 칼럼을 써온 지난 10여 년, 돌아보면 결코 짧지 않은 공백이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관절 통증때문이었다. 정형외과 의사는 단호했다. “컴퓨터 자판과 너무 친해지지 마십시오.” 단순한 진단이 아니라 손가락 휴식을 강력 경고한 터다. 무엇보다 낯설었던 건 글을 쓰지 않으니 탈고의 긴장도 시류에 붙잡힌 밤도 사라졌다. 사람들과 마주할 땐 표정보다 먼저 검지손가락에 눈이 멎었다.
칼럼을 쉰 동안 대통령은 덜컥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를 반복해댔다. 결국 대통령 탄핵, 조기 대통령 선거로 정치권 구도가 바뀌었고 명령 수행․항명 틈에서 눈물 짜던 군(軍)지휘관 여럿도 별똥별 됐다. 전직 대통령 부부의 구치소 수감까지 망가진 최고 권력의 사상 초유 비극은 언제 쯤 가지런 하려나.
행정부와 사법부, 공공기관, 광역지방자치단체들의 국회 국정감사가 선후배 여야 의원 ‘배치기’ 쌈판을 끝으로 F학점표를 받았다. 물론 본령에 충실한 상임위원회도 더러 눈에 띄나 ‘견제와 균형’의 목적과 달리 미숙성 막말‧고함 등 섣부른 겁박(길들이기)만 생산, 대꾸는커녕 피감기관들은 위기 모면용 과잉 퍼포먼스(무조건 엎드리기)를 반복했다.
1990년대 영화 ‘친구’ 중 칠성파‧신20세기파 조폭을 방불케 했다. 오죽하여 국회 고참 보좌관까지 이러한 문제로 혀를 찼을까. 어쨌거나 절제‧대화‧타협, 관용과 배려로 함께 당기고 끌며 머리를 맞대는 게 협치다. 침팬지도 싸운 뒤 포옹한다. 불통과 독선에 세비를 축낼 만큼 민심은 너그럽지 않다.
말마따나 도드라진 정치꾼들은 득실대도 ‘깐부’따위는 없다. 내년 동시지방선거전에 안달 났다. 괘씸죄의 노골적 몽니야말로 정치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환상이요 자폭이다.
그래서 묻는다. 지자체단체장 공천 열쇠를, 혹자는 아직 야만적 게거품으로 철면피를 깔지만 천만에다. 표밭처럼 무서운 비수란 없다. 중요 선택지는 진솔한 언어 행위다. 입동이 스친 가을 끝자락 하늘 좀 올려다보며 여태껏 대충 후려친 말솜씨부터 헹궈보라. 뭉클 하는 정치가 왜 그리 험난한지, 누구 때문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