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 황혜영 서원대 교수 

늘 우리가 입는 삶의 필수품인 옷은 매 순간 우리의 내면과 심리가 투영되는 자아의 표현 도구이다. 우리는 편해서, 잘 보이고 싶어서 혹은 우리를 감추거나 드러내고 싶어서,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옷을 고르지만 정작 그 옷이 곧 나라는 의식은 잘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보그’ 편집장직을 내려놓고 나서 알렉산드라 슐먼이 옷을 직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진심으로 즐기게 된 뒤, 자신이 가진 옷에 대해 왜 샀는지, 옷을 입으며 어떤 기분이 들기를 바랐는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듯이 우리도 늘 입고 다니는 옷으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광고나 쇼윈도우 옷을 보며 느끼는 구매 충동, 매번 옷을 고르는 행위는 모두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자기 표현이자, 세상에 내는 말없는 목소리이다. 내 옷장에 어떤 색상과 디자인 옷이 많은지 보거나 내가 입은 옷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들여다보며 진단해 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성찰의 한 방법이다. 옷장은 가득한데 입을 만한 옷이 없다고 느낀다면 내가 고른 옷들과 진정한 나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옷을 선택하고 입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세상과의 가장 구체적인 소통의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드레시한 옷을 입었을 때와 힙한 청바지를 입었을 때 사이에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옷은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꾸어 입을 수 있는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매체다. 패션을 통해 우리를 짓누르는 획일적인 관습과 사회적 강요에서 벗어나 내가 즐기고 원하는 대로 나의 정체성을 선포할 수 있다. 그래서 옷입기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다움을 생각하는 시간은 스스로에게 위로와 격려, 행복을 가져다주는 내면 치유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쉽게 자신감을 잃고 마음이 주저앉곤 하는데, 그 순간들을 견디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아끼고 귀중히 여겨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옷은 여린 우리 내면을 포근히 덮어주며 자존감을 매만져 주는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매체가 된다. 옷을 통해 자아를 포근히 감싸주고 나의 목소리를 내는 작은 용기는 개인의 치유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 세상을 변화시키는 한 걸음이 되기도 한다. 옷은 단지 몸을 감싸는 의미 없는 물건이 아니라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신으로 설 때까지 나를 지지해 주고 더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반려자가 되어준다.

발렌티노 디렉터 피에르 파올로 피촐리는 패션이 존재하는 이유가 옷이 없어서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꿈과 감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어떤 옷을 입을지 성찰하는 것은 유행을 좇는 행위라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태도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과 맥이 닿아 있다. 옷을 골라 나에게 입혀 주는 것, 그것은 내가 진정 바라는 나를 완성해 나가는 성찰과 자기 실현의 몸짓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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