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변경·사업비 급증 구조
주거안전 정책, 효과 검증 공백
녹지·공원 사업, 주민 조율 난맥상
대전시 서구 도시건설위원회의 18일 행정사무감사는 개별 사업을 훑는 수준을 지나, 도시·녹지 행정의 설계와 집행 구조를 정밀하게 들여다본 자리였다.
의원들은 장태산과 도안, 어린이공원에서 진행 중인 녹지 사업부터 다가구 주택 안전정책, 산림 공모사업, 가로수 관리까지 서로 다른 영역을 짚었지만, 결국 한 곳을 향했다. 서구의 도시·녹지 행정이 초기 설계, 내부 조율, 주민 소통, 성과 점검 어느 단계에서도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박용준 위원장은 녹지 사업의 밑바닥부터 건드렸다. 장태산 물빛거닐길, 도안 무장애 나눔길, 들말어린이공원 정비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설계변경과 사업비 증액을 단일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패턴으로 봤다. 처음 설계를 할 때 지형 조건, 배수 계획, 이용자 동선, 인근 교통 영향 등 기본 변수들을 충분히 반영했다면 공사 중간에 여러 차례 도면을 고쳐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설계 단계에서 놓친 사항이 공사 단계로 밀려 내려오면서 공정은 밀리고, 단가 재산정이 반복되고, 그 결과로 예산이 계단식으로 불어나는 구조가 굳어진 상황을 지적한 셈이다. 그는 예산서 뒤에서 문제를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설계 착수 단계에서부터 검토 기준과 체크리스트를 새로 짜야 한다고 행정에 요구하고 있다.
정홍근 부위원장은 건축과의 주거 안전정책을 정조준했다. 서구가 추진 중인 다가구 주택 불법 가구 분할 방지 정책은 취지만 놓고 보면 임차인 보호와 안전 확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지만, 그 목표가 실제로 달성되고 있는지 보여줄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다. 업무협약 이전과 이후에 불법 구조 변경 적발 건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임차인의 민원 유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현장 점검 빈도와 행정처분 수준은 어떠한지에 대한 기초 데이터가 정리돼 있지 않다면,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구청과 관련 기관이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임차인 신상정보가 불필요하게 공유될 여지는 없는지까지 따져봐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제기했다. 주거권 보호와 개인정보 보호라는 두 축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규정과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으면, 좋은 취지의 정책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신호다.
최규 위원은 목재친화도시 조성사업을 통해 서구의 상징 공간을 설계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보자고 요구했다. 샘머리·보라매공원 일대의 목재특화거리와 목재파빌리온이 단기간에 사진 찍기 좋은 공간으로만 소비되는지, 아니면 서구를 대표하는 장기적 랜드마크로 자리 잡는지는 지금의 설계와 운영 계획에 달려 있다. 그는 설계 공모 심사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한 사례를 투명 행정의 출발점으로 평가하면서도, 이 투명성이 설계 확정 이후 공사 발주, 시공, 유지관리 단계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정보 공개 원칙을 제도화할 것을 주문하는 셈이다. 설계자 선정은 시작일 뿐, 설계 의도가 실제 현장까지 일관되게 유지되는지 관리하는 체계가 별도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혜영 위원은 씨애틀근린공원 고도화 사업의 중단을 두고 공원 행정의 허점을 정면으로 지적했다. 주민 반대가 거세게 분출됐다는 사실은 의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전 소통과 정보 제공, 대안 제시라는 기본 절차가 애초부터 구조적으로 빠져 있었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공원 이용 패턴, 주변 주민 연령 구성, 인접 상권과의 연계성, 소음·조도 변화, 주차 수요 등 생활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견 수렴이 빠진 상태에서 설명회를 몇 번 연다 해서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어렵다. 신 위원은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설문, 표본 심층 인터뷰, 주민 대표 그룹과의 단계별 협의 같은 구체적인 소통 장치를 사업 설계 단계에 포함시키고, 수집된 의견이 실제 설계안에 어떻게 반영됐는지까지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절차가 제도화되지 않는다면 유사한 갈등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경고다.
최지연 위원은 산림청·중앙부처 공모사업 참여 실태를 통해 서구의 전략 부재를 드러냈다. 공원녹지과 주요업무계획에는 산림휴양과 레포츠를 결합한 공간 활용 방안이 포함돼 있는데, 정작 산림 레포츠 공모사업에 대한 내부 논의조차 없었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이는 공모계획을 놓친 것이 아니라, 부서 간 협의 구조 자체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일정, 사업비, 대상지 조건, 향후 유지관리 부담 등을 놓고 여러 부서가 함께 검토하고 우선순위를 정할 회의 테이블이 없다면, 공모 공지는 늘 제때 오지만 서구는 계속 바깥에서 지켜보는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는 공모 브리핑, 후보지 리스트업, 경제성·환경성 분석, 주민 의지 확인까지 포함하는 내부 절차를 정례화해 정책 기회를 적극적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인화 위원은 가로수와 공원 수목 관리의 현주소를 세밀하게 짚었다. 현재 전지 작업은 일정과 예산에 맞춰 일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수종 특성이나 성장 속도, 가지 확산 방향, 보행자 시야 확보, 차량 통행량, 그늘 필요도 등 기본 요소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어떤 도로에서는 보행자의 머리 높이까지 가지가 내려와 시야를 가리고, 어떤 공원에서는 그늘이 필요한 벤치 주변 수목이 과도하게 잘려 이용 편의가 떨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그는 도로 유형별·생활권별 전지 기준을 세분화하고, 수목별 관리 이력을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야 시민이 체감하는 녹지 환경이 서서히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감사에서 드러난 공통점은 명확하다. 사업 이름은 달라도, 서구 도시·녹지 행정에는 초기 설계의 허점, 부서 간 조율 부재, 주민 의견 수렴의 형식화, 성과 검증 체계 미흡이 동시에 얽혀 있다.
의원들의 질의는 이 네 지점을 여러 각도에서 반복해서 파고든 셈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지적 목록을 정리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설계 기준 재정립, 공모 대응 시스템 구축, 데이터 기반 성과 분석, 주민 참여 절차 표준화 같은 구체적인 제도 변화로 옮겨 붙이는 일이다. 행정이 다음 감사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서구 도시·녹지 정책의 신뢰 수준은 그때 다시 평가받게 된다. /대전=이한영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