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하는 학교에도 교목인 은행나무가 교사 옆과 운동장 가장자리에 십여 그루 있는데 지금 그들이 교정을 동화 속 세상으로 만들고 있다.특히 지난달 준공한 송정관 앞에 자리한 한 그루는 제일 먼저 황금도포를 입고 황제처럼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자태는 파란 하늘과 마을의 산등성이와 어울려 성자의 모습이다. 마치 수억개의 금반지를 매달아 놓은 듯 귀하게 빛내며 소슬바람을 가다렸다는 듯이 톡톡 은행을 떨구어 메마른 땅도 포근히 덮어준다. 개교 105주년이 넘은 세월따라 나이를 먹어서인지 잎이 작고 열매크기도 작지만 색은 너무 고와 시나브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다.
딱히 은행나무 뿐만 아니라 저마다 산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 집과 사람도 푸근히 연결해주는 나무들.그럴 리는 없겠지만 모든 나무들이 똑같은 색으로 같은 시기에 단풍이 든다면 아마 우리는 숨이 막힐 것이다. 서로 시기와 색깔도 다르게 조화를 이루어 산은 깊은 신비감을 자아낸다. 살펴보건대 키 큰나무와 작은 나무, 줄기가 굵은 나무와 가는 나무, 잎이 넓은 나무와 좁은 나무 등 그들이 서로 어울려 아름답고 거대한 숲을 이루어낸다는 사실에 이르자 나무는 모두 귀하며 어떤 신성을 지녔다는 생각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다른 빛깔을 지니고 성장 속도가 다르게 자라나고 있다. 산과 하늘이 나무들을 잘 자라도록 말없이 지켜보듯이 부모는 천천히 자녀의 변화를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 너무 빨리 남보다 앞서가게 하려다 아이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기도 한다. 폭력 학생, 부적응 학생의 거의 대부분은 바로 부모의 서두르는, 기다리지 않는, 들어주지 않는 무관심에서 기인함을 흔히 접하기 때문이다.
요즘 각급 학교나 카돌릭 등 종교단체에서도 아버지학교를 열어 가정의 문제는 바로 아버지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순수한 가정 회복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아버지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자는 귀한 깨우침에서 많은 아버지들이 참여해 부부관계도 좋아진다고 하니 무한 다행이다.
박목월 시인도 '나무'라는 산문시에서 나무를 수도승이라 표현하고 그의 마음에 뽑아낼 수 없는 몇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고 나무의 숭고함에 대하여 들려주고 있다. 저마다 귀한 아이들이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잡풀이 아니라마음 깊은 곳에 나무 한그루 씩 심고 가꾸며 비바람과 추위와 나아가 해충의 습격을 이기며 잘 자라나는 나무이기를 소망한다.
붙잡고 있는 것보다 내려놓은 것이 아름답다고, 나무는 일년 내 귀하게 지니고 있던 모든 것들을 이젠 단풍까지 입혀 천천히 내려놓고 있다.
"지금 몇시 입니까?나무를 사랑하는 시간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나무처럼 때론 흔들릴지라도 곧게 자라나고 있는 제자들을, 자녀들을 믿고 사랑하는 시간이다.
/박종순 회인초 교감,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