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는 완벽한 사람을 만들고 토론은 부드러운 사람을 만들고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언술이다. 독서는 인생 바다를 멀리까지 항해 시켜주는 미더운 돛단배이자 지식, 지혜, 정보 등을 얻을 수 있음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도 없거니와 독서를 통하여 체계적 사고력, 창의력까지 배양됨은 다 아는 바이다. 그러므로 한 권의 책을 독서를 하게 되면 훌륭한 선생님 몇 십 분의 가르침과 맞먹는다고 하여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러함에도 현대인들은 삶에 쫓겨서인지 일상에서 독서가 생활화 되지 않았다. 굳이 가까운 일본을 들먹이지 않아도 일본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적이 놀랬었다. 그것도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임에야 더욱 그러하였다.

'책' 하면 저자와 연계된다. 김홍은 충북대 명예 교수이자 수필가는 그의 평론 저서 『문장 표현과 문체』에서 '글은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해 쓰고 이를 펴내서 독자가 깨닫게 함으로써 주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함이다.'라고 일렀다.

이 내용 앞에서 젊은 날 보았던 어느 화장품 회사의 광고문구가 문득 떠오른다. '세상을 아름답게' 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 문구는 '화장품을 얼굴에 바른 어여쁜 여인들의 용모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라는 의미가 내재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화장을 빌미로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시각적인 효과에 대한 내용 아닌가. 문학은 문인들의 심적 나상의 활자화에 대한 감동이지만 문인들이 창작한 작품 자체가 김홍은 교수가 자신의 저서에 언급하였듯이 인생의 정신적 가치이고 생의 기쁨인 것이다.

또한 문학은 겉모습의 화장에 필요한 화장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마음자락에 순백의 미를 치장해주는 지고(至高)의 가치를 지닌 예술이라고 감히 덧붙이련다. 한데 이런 문학을 요즘 젊은이들은 심취하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글 쓰는 일조차 번거롭고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는 미디어 발달로 우리 세대처럼 누군가를 향해 긴긴 편지를 쓰던 아름다운 습작(?) 기간의 결여 탓일지도 모르겠다. 편지보다 메일, 핸드폰 문자로 신속하고 편리하게 자신의 의사전달을 간편화 하다 보니 백지에 정성껏 편지를 쓰던 일은 이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으리라. 프랑스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작문 시간이 주어진다고 하는데 우리는 대학 입시 위주에 혈안이 되어 이런 공부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내가 속한 문단 만 하여도 점점 문인들의 연령이 고령화 되고 있다. 물론 연령이 높다고 하여 글을 못 쓴다는 말은 아니다. 문인들의 다수가 고령화가 되느니만큼 원로 문인들의 문향의 발자취를 이을 차세대의 젊은 문인들이 절실하다고나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적 위상이 있는 기관에서 젊은이들을 겨냥한 백일장, 공모 등을 활성화 하되 소소한 부분까지 젊은 층을 의식하여 그들의 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적극 유도하면 어떨까 싶다. 이는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가꾸기 위한 작지만 매우 뜻 깊은 일이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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