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치의 기준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변혁의 시대인 오늘을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아무도 대신으로 살아줄 수 없는 진정한 자신의 삶을, 현대를 사는 젊은이에게 있어서는 무엇을 생각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는 더욱 더 중요한 것이다. 이제는 자기 자신의 체험으로 산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을 재검토 해봐야 할 것이다.

왜 살고 있는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살고 싶다. 왜 살고 있는지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허나 그것으로 좋지 않은가. 인간이면 인간으로서 살라. 너는 인간인데 어찌해서 인간 이상의 것을 바라는가. 말이 두 발로 걸으려고 하면 그것은 우습지 않겠는가? 말은 말로서 말답게 살면 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알고 인간답게 살면 족하지 않을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알고 인간으로서 사는 것뿐이다. 인간이라면 인간임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의 방법이 있다. 인간이라는 것에 고민하여 인간으로서의 즐거움을 맛보는 시기를 잃는 것은 어린이로서 맛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보지 않는 것과 같다.

어쨌든 힘껏 살아보라. 인간이다. 인간이다. 너는 인간인 것이다. 걷어차도, 때려도, 거꾸로 서도, 뒤집혀도 아아 너는 인간인 것이다. 인간이라면 인간 한계 안에서 사는 것이다. 새장 속에 사는 새는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세상 밖에 있는 새는 새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새장 속의 새는 새장 안에서 사는 것이다. 안 되는 것을 하려고 고민하지 말라.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려고 하지 말라. 독신(獨身)인 때는 독신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결혼하면 결혼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바보스러운 것은 독신인 때 결혼하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고 그것만 생각하면서 독신의 재미를 맛보지 못하는 아가씨이다. 바보스런 것은 결혼 했을 때 독신시대의 가벼운 마음만을 그리워하는 남성이다. 인간이라면 인간임을 사랑하고 현대에 태어났으면 현대를 사랑하는 것이다. 과거는 부도수표, 현재는 현찰, 미래는 약속어음과 같다.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는 달리 살려고 하는 의욕이 자기 속에 있음을 자각(自覺)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식적으로 그것을 실현하여 갈 수가 있다. 인생은 살려고 하는 의욕이 전개되어 가는 과정이다. 나는 인생의 법칙을 인생의 밖에서 찾고 싶지는 않다. 갑자기 창조주라든가 神 이라든가 하는 인생과 직접관계가 없는 것을 끌어내어 그것에 따라서 살아가라고 하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구체적인 인생과 떨어져서 자기와 떨어져서 신(神)을 끌어내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나는 인생의 법칙을 인생 그 자체에서 만들어 내고 싶은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인생 그 자체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살려고 하는 의욕이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저 이것만을 의지해서 살아간다. 인생은 다른 것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다만 인생, 그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生長할까. 생장하기 위해 생장한다.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란 관계가 없는 神을 위해서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살려고 하는 의욕을 실천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살려고 하는 의욕은 가장 훌륭히 실현될까. 그것은 스스로 어떤 것에도 마음을 뺏기지 않고 항상 “자유로운 마음”을 가짐으로서만이 실현되는 것이다. 인간만이 살아있는 것을 알고 있다. 인생이 가치가 있는지, 가치가 없는지, 그런 것은 나는 모른다. 아니 그런 것을 정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할 일이 아니다. 다만 아는 것은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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