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에도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간 비등하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추진하는데 대해 노 대통령은 "미래를 위해 제 때 할 일 하는 것"이라며 국가적 도약을 위한 최고지도자로서의 결단이라고 밝혀왔지만, 임기말 국정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가능성과 더불어 과제도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한미 fta는 협상 타결의 직접적 영향권에 놓인 경제 영역을 넘어 정치, 사회적 의제 및 담론 구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비록 퇴임을 10개월여 앞둔 상황이지만 노 대통령 또한 그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게다가 참여정부의 핵심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진보세력들이 한미 fta 추진에 반발해왔고, 옛 여권지도자들도 반대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지지 계층 결집에도 적잖은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각종 난관을 뚫고 한미 fta 타결에 이르게 된데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강한 버팀목이었던 만큼 협상 결과는 물론이고 향후 비준 여부에 따른 책임 문제도 고스란히 노 대통령의 몫으로 남게 됐다.

한미 fta 체결이 앞으로 한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것은 일단 논외로 두고, 우선 이번 협상 타결이 `정치인 노무현'의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노무현 디스카운트'라는 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임기 4년 내내 보수층의 반대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노 대통령이 한미 fta를 통해 경제적 성과 면에서 재평가를 받고 '정치적 복권'도 이룰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조심스럽지만 다소 긍정적 전망이 많을 것이라는 관측들도 나오고 있다.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 미국과 fta 협상을 타결했다는 것 자체가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에게 따라붙었던 `반미.좌파'라는 정체성 논란을 상당부분 해소할 것이란 전망이 깔려 있다.

노 대통령이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대선 당시 자신을 지지했던 중도를 다시 껴안을 수 있다면 국민연금 개혁법안과 로스쿨 등 사법개혁안 등 미완의 미래과제 추진 노력에도 탄력이 붙을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 지도부도 한미 fta 타결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과거 임기말이면 되풀이됐던 국정누수 현상도 최소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노 대통령이 지지율의 등락에 상관없이 추진하는 결단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적지 않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분석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한미 fta 추진을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미래를 위해 결단한 것"이라고 했지만, 협상 타결이란 구체적 성과는 결과론적 측면에서 볼 때 대선 정국에 휩쓸리지 않는 현직 대통령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지렛대로 작용할 개연성도 있다.

대선까지 현실적인 대통령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불과 8개월여 남긴 상황에서 과거 심각한 레임덕에 시달렸던 전임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얘기다.

여기에 예정대로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발의하고, 그간 정치권에서 꾸준히 가능성이 제기돼온 남북정상회담 카드가 현실화된다면 노 대통령의 정국 영향력은 극대화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그러나 한미 fta는 정치권과 진보층의 반대 등 비준까지 더욱 험난한 과정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결코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앞으로 국회 비준 절차를 앞두고 협상 결과의 대차대조표가 '마이너스'로 판명되는 등 예기치 못한 악재들이 발생한다면 미래과제에 무게를 둔 노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운영 구상이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제 협상내용에 대한 찬반 토론이 가장 큰 `도전적 과제'가 됐다"며 "더구나 대선정국의 유동성을 감안할 때 반드시 노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여론 수렴이 이뤄졌다 해도 농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국회에서의 논의가 지지부진한 양상에 빠지거나 최악의 경우 비준동의안이 부결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일제히 한미 fta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나선 것도 적잖은 정치적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반대론자들에 대한 설득에 직접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 비준을 임기내에 마무리지음으로써 역사에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남을지는 결국 노 대통령의 정치력에 달린 형국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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