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박광호·편집부국장

'곰 보다 여우같은 마누라가 낫다'고 했던가. 사람 답답하게 뚱하고 있는 것 보다는 그래도 사근사근대며 가려운데 알아서 긁어주는 사람이 더 좋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것은 개인간의 문제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맞대며 한 평생 살아가는 부인은 퉁명스러운 것 보다 적당히 애교도 부리고, 착착 당겨오는 사람이 좋을 지 몰라도 공적인 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 보고 '냄비근성'이 있다고 한다. 무슨 일이 터지면 금방 어떻게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어버리기 일쑤다. '반짝 근성'인 셈이다.



가르키는 손가락만 보는 꼴



문제의 본질 보다는 곁가지, 눈요깃거리에 더 신경쓰고 관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흥미 위주 얘깃거리에 약하고, 말거리를 애써 찾아 나선다. 자연 본질은 벗어나게 돼있다.

지난 2~4일 있었던 역사적인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이런 안타까운 징후는 적잖이 드러났다. 만남 자체가 중요하고, 첫술에 배부르지 않듯 하나하나 차근차근 진행 해나가야 할 국가적 이슈를 흥미 위주로 보는 게 많았다. 언론도 부채질을 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같이 차를 타고 가는 지, 안 가는 지가 중요했고 만찬장에 참석할 지, 안 할지를 놓고 눈에 불을 키다시피 했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우리 대통령이 분단 이래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가면서 평화 번영의 물꼬를 트려고 했던 게 중요한 거지, 같이 동승했는지 안 했는 지는 그 다음 문제다. 다분히 지엽적인 것이지 본질이 아니다.

한 술 더 떠 김 위원장이 7년전에 비해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나돌았다. 설사 그렇더라도 그것을 입에 오르내리고,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삼는 것은 한 민족 동포로서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예우가 아니다. 거꾸로 북한 주민들이 &amp;amp;amp;amp;quot;남한 대통령이 예전같지 않고 병색이 완연한 것 같다&amp;amp;amp;amp;quot;고 하면 자신들의 대표를 보낸 우리 마음은 편할까.



진중치 못한 경박함의 극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극치는 우리 국방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공식 인사 때 나왔다. 국방장관이 머리 하나 안 숙이고 꼿꼿이 있는 걸 보고 &amp;amp;amp;amp;quot;왜 그랬을까&amp;amp;amp;amp;quot;라며 별의별 의미를 다 부여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직속상관은 물론이고 누구를 만나든 인사를 나눌 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군례(軍禮)에 따라 비록 현직 군인은 아니지만 군 최고 책임자로서, 몸에 밴 무인 정신으로 정정당당히 인사를 나눈 사람을 보고 뭐가 어땠느니 하면서 온갖 흥미성 추측을 남발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군 부대를 시찰할 때 머리 숙여 인사하는 군인을 본 적이 없다. 사관학교 생도들이 임관(졸업)할 때 임석 상관으로 마주 선 대통령에게 넙죽 고개 숙이는 것 역시 못봤다. 군인답게 당당하게 서서 악수하며 경의를 표하면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경박하게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

하기야 특사로 만나 안면이 있다고 김 위원장과 악수할 때 두 손으로 감싸쥐고 연거푸 머리를 숙인 관리와는 비교가 되긴 했다. 이 관리는 드러나지 않고 활동해야 할 정보기관 총수임에도 여기저기 전면에 나서 사진빨을 받았다.

아무리 이번 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고, 친밀감의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을 대신 해 나라의 중대사를 논하려고 간 주요인사의 행보로는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을 받을만 했다.

무슨 일이든 중심을 잡고 진득하게 기다리며 바라보는 풍토가 아쉽다. 정작 고민할 것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것 갖고 이러쿵저러쿵 헛김 빼는 그런 비생산적인 행태에서 벗어나야겠다.

그것이 남북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국민으로서 민족의 문제를 풀어가는 정책적 대안까지 내놓는 무거움을 때에 따라서는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3, 4차...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며 주변 열강의 각축 속에 우리끼리 손잡고 웃을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지 않을까.

박광호&amp;amp;amp;amp;middot;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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