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가 밝았는데도 파릇한 너희의 앞날에 대하여 희망을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같은 반 친구에게 시달리다 못해 자살을 택한 아이와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살 것이 분명한 그들의 부모님과 이들을 곁에 두게 된 귀여운 아이야, 참으로 미안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친구들이 모르는 체 눈을 감고 심지어는 거들기까지 하는 학교 풍토를 내놓고 원망하지도 못하고는 겨우 낙서장에나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친구의 무력에 미안해 할 아이야, 그래서 더욱 미안하구나.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가 숨쉬는 이곳이 이제는 '아무나 조롱하는 사회'가 되었단다.
세상일에는 일단 꼼수가 숨어 있다고 보고 딴죽을 거는 조롱은 가장 인기 있는 삶이 되어 버렸어. 그러면서 찬반논쟁은 퇴색됐고 토론과 표결이 사라졌으며 우리나라는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으로 변했지.
진실을 아랑곳하지 않는 조롱꾼은 혼자 있을 때 비겁하고 떼거리로 있을 때 위험해졌다고 선각자들은 걱정이란다.
충북에도 학업성취도평가 3년 연속 1위, 전국소년체전 2년 연속 3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4년 우수 교육청 선정 등 교육 본질을 둘러싼 다방면에 성과를 낸 충청북도교육청의 노력을 폄하하며 조롱거리로 만드는 이들이 있단다.
국회의 정치꾼들과 길거리에서 핏대를 올리는 어른들이 보여준 싸움의 기술을 일부 교사들이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
너희가 평소에 가장 많이 접하여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겠니? 그런데 그 중의 소수가 수업 시간에 대통령을 욕하고 교육청에 와서는 폭력을 마구 휘두르니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 모르겠다.
학생은 교사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자란다는데 싸움 잘 하는 교사가 학생에게는 싸우지 말라고 하면 그게 말이 되니?
학교폭력은 너희가 아니라 간이 부은 교사 때문에 생긴 잘못이란다.
그러나 싸움을 일삼는 급진 세력들이 힘들어서 학생 지도에 손을 놓아버린 간 오그라든 교사들의 잘못도 있어.
요즘의 학교폭력을 치유하려면 헌신하는 교사의 간만이 특효약인데 그들이 간을 떼어 주기에는 몸과 마음을 너무 많이 다쳤단다.
그러나 말이다. 화날 일이 있더라도 모든 이가 화를 내는 것은 아니므로 본질적으로 화는 상대방이 아니라 나 때문에 나는 것이 아니겠니?
이제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자꾸나. 큰 강물이 마를 때는 시냇물부터 살펴보는 것이란다.
먹고살기가 급급해 남아 있는 우리도 기운을 추스르고 꽃과 열매를 시들게 하는 흙과 뿌리를 살펴보마. 그래도 교육만이 최후의 살 길 아니겠니?
참으로 민망한 새 날에 너희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얘들아, 정말 정말 미안하다.
/이진영 매포초등학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