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느 텔레비전 사극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의 남자 출연진 다수가 꽃 미남들이어서 아줌마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평소 꽃 미남보다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다운 남자를 선호하는 나로선 남자 주인공들에겐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아역 배우들의 능란한 연기를 눈여겨 볼 뿐이다. 한데 그 아역 주인공 중에 공주의 예동으로 궁중에 들어온 보경이(김소현 분)라는 여자 아이의 행동이 참으로 교활하고 간교한 내면이 엿보여 비록 극중 인물이지만 탐탁하지 않다. 자신의 아버지가 당쟁 야심을 이루기 위해 딸이 궁궐에 들어가기 전 부탁한 말을 떠 올리며 허연우(김유정 분) 앞에서 낯빛을 가리는 언행에선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사악한 본성은 변함이 없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이에 어느 사석에서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험담을 귀동냥으로 들은 게 떠오른다. 나또한 험담 속의 주인공이 다른 허물은 차치하고라도 평소 안하무인의 언행을 저지르는 것을 몇 번 목격한 바 있어서 그 말을 곁에서 들을 땐 속으로 동조 하였었다. 무엇보다 남의 입장을 헤아릴 줄 모르는 그의 편협 된 언행이 난 못마땅했었다. 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찌 보면 오히려 그가 순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한마디로 처세에 능한 사람이라면 그토록 매사 솔직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어떤 현상이 눈에 거슬려도 의중을 숨기고 바른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따진다면 외려 이렇게 처세에 능한 사람이 한편으론 더 경계해야 할 인물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사극 중의 보경이처럼 진심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어려서 나의 어머니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니 멀리 하라고 우리들에게 타일렀었다.

흔히 처세술하면 이즈막엔 세상사에서 손해 보지 않고 자신의 잇속을 알차게 잘 챙기며 사는 삶의 기술쯤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종잇장처럼 매끈하여 내면의 여백이 없는 현대인들의 영악스러움에 그동안 길들여져서인지도 모르겠다.

한 예로 사업을 하는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현대인들은 조금치도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베풀지 않는다고 한다. 사업장에 아르바이트를 쓴 적 있는데 자신의 몸이 아파 아르바이트생이 정해진 시간외에 10분 더 사업장에서 지체했단다. 한데 그 10분도 임금으로 환산해 달라고 말하더란다. 한마디로 손톱만큼도 자신의 것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어디 이뿐이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이다. 이는 이기심의 만연 탓이다.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이런 사회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 극심하다. 삭막해지는 사회에서 이제 가슴 따뜻한 사람을 만나기란 좀체 어려운 일이 됐다. 한편 남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친절을 베풀면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이기커녕 '무슨 잇속을 챙기려고 그러나?' 라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기 일쑤인 세태이다. 그럼에도 어느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보고 내가 날마다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늘 그리웠었다. 연일 신문지상과 방송 매체를 장식하는 부정부패의 악취, 궤도를 벗어난 사람답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는 험악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절절히 그리운 사람들이었다. 다름 아닌 추위에 고통 받는 독거노인들을 위해 보일러를 무상으로 교체도 해주고 수리도 해주는 훈훈한 미담 속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이다. 내 것 아깝지 않은 사람 그 누구이랴. 하지만 이렇듯 아낌없이 내 것을 덥석 남과 나누는 사람들은 그리워할수록 가슴에서 향내가 물씬 풍길듯하여 오늘도 그런 소식들을 전해 줄 당신들을 목하 그리워하고 있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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