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교육청에 싫은 소리 좀 해야겠다. 도교육청이 지난 해 11월 일선 고등학교에 한 장의 공문을 내려 보냈다. 제목은 '특정 학교 합격 홍보시 차별 행위 자제 관련 협조 요청'이다. 한마디로 특정 학교에 몇 명 합격했다고 동네방네 떠들어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기를 죽이지 말라는 얘기다.

특정 학교란 속칭 말하는 일류 대학, 특목고 등이고 일류 대학교는 까놓고 얘기하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 KAIST와 (한)의대 등 몇몇 학교다.

국가인권위원회 협조 사안이라는 것도 첨부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특정 학교 중심의 홍보를 차별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하루 전 "최근 2년 간 이 같은 행태가 학벌을 조장한다는 진정이 50여 건 접수된 만큼 일선 학교에서 이런 일이 없도록 지도해 달라"고 전국 시·도교육청에 요청했다.


- 특정 학교 합격 홍보 자제 어겨


그런데 이 지침이 깨졌다. 그것도 공문을 받은 학교가 깨뜨린 게 아니라 공문을 내려 보낸 도교육청이 스스로 뒤집었다. 공문을 보낸지 불과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지난 2월 3일 "올 대학 입시에서 충북이 서울대 합격생 71명을 배출했다"고 발표했다. 일선 학교에는 특정 학교 중심의 홍보를 자제하라고 해놓고 정작 자신들은 이를 무시한 것이다. 앞뒤 안 맞는 행정이라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특정 학교 중심의 합격자 발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11년 초에도 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비슷한 공문을 내려 보냈다. 그 공문이 시달되기 전까지 각 학교는 저마다 특정 학교에 몇 명이 합격했는지 자랑하는 현수막 내걸기에 바빴다. 특정 학교를 뺀 나머지 학교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의 근본인 전인·인성 교육은 남의 나라, 먼 얘기였다. 학교나 교사 모두 이 하나로 실적이 평가되다보니 특정 학교 진학이라는 한 건 주의에 목을 맸다.

이 현수막은 졸업식 때도 그대로 매달려있으면서 학생들은 물론 자녀의 학창 시절을 축하해주려는 학부모, 친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럼 우리는 뭐냐" "특정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는 학교도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이어졌다.

괜히 기분 잡쳐가며 학교 측의 몇몇 학생 떠받들기에 이용되는 들러리가 되기 싫다며 졸업식에 가지 않겠다는 아이들까지 나왔다. 이를 곁에서 보는 학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당시 그러던 억지 자랑이 도교육청의 자제 공문으로 좀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도교육청이 먼저 나서 그런 짓 하지말자고 하더니 덜컥 일을 저지른 것이다.


- 교육은 '바담 풍'아닌 '바람 풍'


물론 도교육청도 현실적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어떤 교육인가. 세계에서 공부 시간이 가장 많은 학생, 인간 됨됨이보다 특정 학교 진학 기술 가르치기를 강요받는 교사,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자식만은 특정 학교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성화가 장난이 아닌 곳 아닌가. 그 속에서 진학 실적에 시달리는 교육 관계자들의 심적 고충 또한 남다를 것이다. 괜찮은 실적이 나오면 자랑도 하고 싶을게다.

그러나 현실이 아무리 겉 다르고 속 다르다 할지라도 교육만큼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왜냐면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 밖의 이유는 거추장스럽다. 교육이 현실에 휘둘린다면 어떻게 교실에서 인간 됨됨이를 논할 것이며, 어떻게 미래를 위해 자신을 갈고 닦으라고 가르칠 것인가.

그래서 교육은 백년대계, 교직은 천직이라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바담 풍(風)'이라고 새는 소리를 해도 교육만은 '바람 풍(風)'이라고 제대로 내뱉어야하는 이유다.



/박광호 중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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