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이 된다.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인 16번을 배정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정치인이기 보다 시골 마을에서 아름다운 시를 쓰는 순수 시인이기를 바랬다. 그도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이 되면서 "국회의원에는 절대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위의 강력한 추천과 충북 출신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의 노력으로 당선 안정권 순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집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서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두려움으로부터 내 문학은 시작되었다"고 썼다. 그는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강둑에 쪼그려 앉아 울어야 했고 국물 수제비를 먹으며 학찰 시절을 보냈다고도 했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에서도 국어 선생님의 꿈을 키워 시골 중학교 교사가 된후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을 출간, 베스트 셀러 작가로 우뚝 섰다.

'접시꽃 당신'은 암 진단을 받은 아내가 낳은지 네달 된 딸과 세살 된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자 그 과정에서 쓴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접시꽃 당신', '병실에서', '암병동' 등을 묶어 시집을 낸 것이다. 당시 전국 일간지는 도 시인을 인터뷰하기 위해 몰려 왔고 그의 인기는 시간이 갈수록 식을 줄을 몰랐다. 지금도 도 시인의 접시꽃 당신은 문학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가을비' 등은 교과서에도 실려 많은 학생들의 암송시가 되기도 했다.

도 시인은 전교조 출범 초기 충북지부장을 맡아 일하다 감옥살이도 했다. 그가 포승줄에 묶여 구치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왜 저 사람이 잡혀가야 하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충북 국정감사에서 도 시인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국 상황은 쉽게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해직 10년 만에 그는 다시 시골의 중학교에 교사로 발령을 받아 그 답게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기도 했다.

도 시인은 "명성이 계속 수입으로 이어지게 슬픈 얼굴을 한 시를 쓸수도 있었으나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치열하되 거칠지 않은 시, 진지하되 엄숙하지 않은 시,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 진정성이 살아 있되 거창하거나 훌륭한 말을 늘어놓지 않는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진정한 서정 시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느 시골 마을에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텃밭을 가꾸며 산과 강과 하늘과 산새 소리를 시로 쓰며 촌노처럼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살아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조용히 살기를 원한 그를 정치판이 그냥 두지 않았다. 결국 연막탄이 터지는 진흙탕 국회로 끌어 드린 것이다. 그동안 유명 작가 중에 소설가 김홍신씨, 김한길씨 등이 국회의원을 지냈다. 처음에는 왕성한 활동으로 박수를 받았으나 결국 흐지브지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그들이 작가도, 정치인도 아닌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도 시인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접시꽃 당신의 순수한 이미지가 혹시 연막탄 정치판에서 눈물, 콧물에 젖어 끌려 나오고 결국은 시인으로써도 정치인으로써도 잊혀진 사람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도 시인은 상임위 활동을 '문방위'에서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한류를 대중문화가 이끌고 있지만 앞으론 본류 문화가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힘써 보겠다"고 말했다. 또 "경제 민주화 실현은 물론, 보편적 복지 달성과 불안한 남북관계를 극복해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일조하고 싶다"고도 했다.

시 쓰는 일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 정치다. 접시꽃 당신이 국회의 문을 나올때 정치인으로써도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빨리 시인으로 다시 돌아와 더욱 성숙하고 감동적인 시를 쓰기를 기대한다.



/조무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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