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A 씨는 선거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다. 자신이 직접 지방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지만 많은 시간을 모시고 있는 '주군'을 당선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선거참모로 활동해 왔던 인물이다. 속된 말로 선거라고 하면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이런 그가 이번 4·11 총선를 겪으면서 '이건 아닌데'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많이 든다고 해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의 대답은 놀라웠다. 선거판이 너무 살벌해져 마치 전쟁터에 나온 것처럼 살의(殺意)가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과거에도 선거판이 과열되면 경쟁 후보간 치고받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치 도의적인 측면에서 넘지 말아야 될 선은 지키려고 가급적 애를 썼는데, 이런 모습을 이번 선거판에서는 눈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 전쟁터 살의 느껴질 정도


서슬퍼렇게 날선 대립각을 세울 때는 세우더라도 동종(同種)의 일을 하고 있다는 하나의 이유 만으로 돌아서면 서로를 생각해 주는 인간적인 정(情)이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인간적인 연민은 고사하더라도 살벌한 분위기에 소름이 돋을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불구대천의 원수인 양 오로지 당선이라는 지상 목표 만을 위해 돌격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살벌함을 넘어 인간적인 비애까지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선거가 지역을 살리고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반목시키고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선거의 부작용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A 씨의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선거를 너무 감성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작금에 돌아가는 선거판을 보면 그의 말에 상당한 공감이 간다. 실제 충북의 최대 격전지라고 하는 청주 상당의 상황을 보면 과연 누굴 위한 선거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걱정이 앞선다. 하루가 멀다 하지 않고 터져나오는 의혹과 소문, 말로는 정책선거를 부르짖으면서도 속내로는 상대방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이를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만들기에 혈안이 돼 있는 네거티브 선거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관권개입 의혹, 논문표절 의혹, 나이 논쟁, 성상납 괴소문 등등…. 혹자는 이러한 청주 상당의 선거판을 '네거티브 선거전의 완결판'이라고 희화화할 정도로 부끄러운 선거전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대해서는 명명백백하게 사실 여부가 가려져야 한다. 수사기관에서도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수사력을 집중해 가능하면 조속한 시일 내에 실체적 사실여부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


- 선거는 민주주의의 바로미터


어찌됐든 '공'은 사법기관으로 넘어간 만큼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책선거로 돌아가야 한다. 진정으로 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정책과 공약을 통해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명색이 현직 국회 부의장과 전직 충북지사가 맞붙는 '충북 정치의 1번지'라고 하는 청주 상당이 추악한 선거전의 대명사로 대내·외에 비쳐지는 오명(汚名)을 뒤집어 써서야 되겠는가.

흔히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자 축제라고 한다. 한마디로 선거라는 제도가 민주주의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누가 더 민의를 잘 읽고 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선거이지, 누가 더 추악하고 못됐는 지를 까발리는 경연장이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 적군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프레임에 갇힌 살벌한 정치판에서 이러한 꽃이니, 축제니 하는 말이 빛바랜 단어가 된 지는 오래지만 그래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정치판에도 사람사는 온기(溫氣)가 돌기를 기대해 본다.



/김정호 편집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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