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을 갓 넘긴 여동생이 혈액 암으로 죽은 지 일 년이 되어 목련공원 봉안당을 다녀왔다. 장미가 하얀 담장에 붉게 피어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우거진 숲에서 우는 새소리도 듣지 못하고 바람이 되어 자기 사진 앞에 서 있는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언니 참 좋은 세상이지?, 이렇게 좋은 세상에 몸속 부속품들을 갈아 끼우면서 백 살은 더 살아야지" 라고 깔깔 웃던 모습도 흐려지고 있다. 병원 응급실에 들어 간지 며칠 안 돼 중환자실로 옮겨져 눈을 감고 있어, 하고 싶은 말도 못한 채 이곳 목련당으로 왔다. 자기가 말한 몸속 부속품을 갈아 끼울 시간도 주지 않았다. 병원가기 얼마 전 동생은 어디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몸에 멍이 퍼렇게 들었다고 얘기하였다. 의학 지식이 없어 그때 이미 혈소판이 파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때를 놓친 것이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동생아!' 팔십 구세의 어머니는 동생이 죽었어도 목사였던 오빠가 칠년 전에 소천 하셨을 때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식사를 잘 하신다. 특히 오빠는 외아들이라서 식음을 전폐하실 것으로 가족들은 생각했는데 너무 의외였다.

"엄마, 오빠 보고 싶지 않으세요?" 하고 물으면 어머니는 "보고 싶어도 얼굴이 생각이나지 않아서 …." 하며 말 꼬리를 흐리신다. '일상의 모든 것을 오빠에게 초점을 맞추고 계셨던 그 모든 추억을 세월과 함께 잊으셨구나!' 하고 생각하며 늙으면 추억도 같이 늙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든다.

청원군 양귀비 꽃밭이 TV에 소개 되어 친지들과 그곳을 찾았다. 뉴스에서 본 것처럼 양귀비꽃들이 넓게 펼쳐진 예쁜 꽃밭이었다. 꽃밭에서 젊은 엄마와 아기들, 중년여성들이 여러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연출들이다.

오빠가 떠난 후 어머니를 인천에서 청주로 모셔왔다. 청주에서 새살림을 차린 것 같이 모두 새것으로 준비해 놓고 어머니의 짐을 가볍게 하여 모셨다. 짐을 정리 하면서 어머니가 결혼 전에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 결혼하여 아버지와 같이 찍었던 사진 그리고 아버지가 젊었을 때 동그란 안경을 쓰고 글을 쓰시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아버지의 잘생긴 독사진 등이 보이지 않아 사진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아 모두 불 태웠다고 하신다.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셨던 어머니의 역사를 모두 불살랐다니 놀라웠다.

"엄마 나를 주시지" 너무 섭섭했다. 아버지는 6.25한국전쟁 때 돌아 가셔서 어머니가 유일하게 간직하셨던 보물 같은 사진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버지 사진을 내가 가지고 있었을 것을 …

'이제 아버지의 영상은 어머니와 내게서 영원히 지워져 버린 것일까?'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섭섭하고 슬픈 감정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저기 양귀비 꽃밭에서 연출한 저 사람들의 사진들도 언젠가는 정리할 시간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저 행복한 모습이 영원하기를 기원해 본다.

미래는 부속품을 갈아 끼우며 100년 사는 시대에 인간은 행복을 즐기며 살 것이다.



/문채련 충북 가족치료연구소 소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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