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규 원장의 생활 동의보감
요즘 웰빙 바람이 불면서 다양한 식품과 음식들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종합영양제, 비타민 제제 등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날로 팽창하여 대중매체를 통한 허위 과장 광고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사업이 된다는 뜻이지요. 건강을 증진시킨다는 허위 과장 광고아래 갖가지 이상한 요리들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동물들의 특정 부위, 특이 식물, 심지어는 한약재까지 이용하여 기괴한 음식을 만든 후 검증되지 않은 내용으로 마치 건강에 좋은 것인 양 선전하고 있습니다. 웰빙 열풍과는 별도로 지구촌의 다양한 음식들도 선보이고 있으며, 전통음식들도 새롭게 개발, 단장되어 식도락가들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반면,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의 생활에 부응하여 햄버거, 도넛 등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정크 푸드] 또한 주위에 널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건강기능식품들은 표방하는 효능이 없거나 과장된 것입니다. 특히 이들 식품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정상적인 식생활을 방해하여 오히려 인체에 해를 끼칩니다. 특정 한약재를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음식과 한약은 그 뿌리가 같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 중에서 성질이 온화하여 꾸준히 신체를 자양할 수 있는 것을 밥상에 올렸고, 성질이 날래서 질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을 한약으로 썼습니다. 평소 좋은 음식을 꾸준히 먹어 신체를 자양해야 하므로, 옛 어른들은 '밥이 보약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한약은 몸이 허약해졌거나 병이 생겼을 때만 체질과 병증에 맞추어 먹어야 하는데, 인삼, 홍삼, 건강기능식품 등 성질이 날랜 것들을 평소 꾸준히 먹으면 오히려 인체의 균형을 파괴하여 건강을 해칩니다. 꾸준히 복용할 수 있는 보양한약은 별도로 있습니다.
서구 식단이 일반화되면서 빵, 우유, 햄버거, 피자, 튀김치킨, 과자 등 인스턴트 음식이 아이들의 주식이 되었습니다. 밀가루 음식은 피부가 거친 서구인에게는 보약과 같은 음식이나 피부가 조밀한 우리에게는 독약과 마찬가지입니다. 밀가루는 피부에 열을 채이게 하여 각종 피부 트러블을 유발하고 풍(風)을 움직여 각종 질환을 일으키므로, 체질에 상관없이 우리 민족에게는 해롭습니다. 그러하기에 조상들은 예로부터 밀을 곡식으로 생각하지 않아 재배하지도 않았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우유를 급식으로 주기도 하는데, 오랜 낙농으로 우유의 분해효소를 지닌 서구인들에게는 좋은 영양원이나, 우리에게는 소화불량 혹은 영양과다 등을 유발하는 해로운 식품입니다. 더불어 두뇌개발을 저해하고 치아건강에 해로우며 소화기 발달을 방해합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해로우며 특히 갓난아이에게는 더욱 해롭습니다. 근래 초등학생들 중에는 비만,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이른바 성인병에 시달리거나 비염, 아토피, 천식 등 알러지 질환에 노출된 아이들이 많은데 대부분 잘못된 식생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음식은 건강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코로 숨을 쉬는 것은 천기(天氣)를 받아들이는 것이요, 입으로 음식을 먹는 것은 지기(地氣)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했습니다. 천기와 지기는 우리 몸을 유지하는 에너지[정기신혈(精氣神血)]로 전환됩니다. 좋은 공기와 좋은 음식은 건강에 필수 요소입니다. 그럼, 어떤 음식이 건강에 좋을까요?
가장 좋은 음식은 예로부터 먹어왔던 전통 음식입니다. 밥, 국, 김치, 찌개, 나물, 생선, 된장, 고추장 등 우리 밥상에 올라왔던 전통 음식들은 조상들의 한의학적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살아있는 문화입니다. 쌀밥은 기운을 돋우는 가장 좋은 음식이고 콩은 혈(血)을 키우는 가장 좋은 음식입니다. 김치는 음양한열이 조화된 음식으로 우수한 자양분을 갖추고 있고, 간장 된장 고추장 등 각종 장류는 스트레스와 공해로부터 쌓인 독을 정화시키는 해독제입니다. 길게는 수천 년, 적어도 수백 년 이상 먹어오면서 검증된 건강식품이 바로 우리의 전통음식입니다.
전통적으로는 밥, 국, 김치를 기본으로 하는 밥상을 반상이라 하는데 반찬의 수에 따라 3첩, 5첩, 7첩, 9첩 등으로 분류됩니다. 양반가에서는 5첩 이상을 기본으로 하였는데, 5첩 반상은 밥, 국, 간장, 초간장, 김치, 찜이나 찌개 외에 다섯 가지 반찬을 더 올립니다. 전통 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그 숨겨진 뜻을 알면 실천하기 쉽습니다. 옛날 반상에 반찬수가 많은 것은 음식을 골고루 먹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의학에 따르면, 한 끼니 식사 때 적어도 10가지 이상의 반찬을 골고루 먹어야 우리 몸을 구성하는 정기신혈을 제대로 자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편식이 되며 이는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저해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어른들은 노화가 빨리 진행됩니다. 5첩 반상 정도만 되어도 반찬 수는 10가지에 이르렀으니, 조상들은 식사 한 끼를 할 때도 한의학의 이치에 따라 양생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를 지키는 것은 더욱 쉽습니다. 다양한 밑반찬을 만들거나 구매하여 냉장고에 보관하다 식사 때 상에 올리면 되니 예전보다 훨씬 편리합니다. 반찬 재료는 되도록 계절에 맞추어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계절음식은 계절 변화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봄에는 주로 춘곤증에 시달리는데 춘곤증에는 봄나물이 가장 좋은 보양식품입니다. 달래 냉이 씀바귀 등은 간의 기운을 돋아주고 피로를 풀어주어 봄의 오르는 기운이 최대한 발현되도록 도와줍니다.
이제부터라도 전통 식단을 되살려 우리의 건강을 지켜야겠습니다. 매 끼니마다 되도록 십여 가지 이상의 반찬을 골고루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오천 년 문화유산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수백 년의 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가 있습니다. 문화의 깊이는 생활에서 드러납니다. [끝]
박성규 예올한의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