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 일본전을 마치고 축구 대표팀 주장 구자철의 인터뷰가 있었다. 일본전에 어떤 맘으로 대비했느냐는 질문에 "호텔에서 전에 일본에게 패했던 메모를 보면서 다시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이 여운을 남겼다.

'메모를 보며 다시는 이런 감정을 갖지 않겠다는 각오를 되새기는 선수의 준비가 있었기에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획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끄덕여졌다.

골프 경기를 보다보면 코스에서 샷을 하기 전에 선수들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코스를 확인하는 경우를 종종본다. 연습 라운딩이나 전 대회에서 거리며 핀 위치 등에 대한 정보를 적어 두었다가 대회에서 활용 하는 것이다.

운동 경기에서도 메모는 이토록 적절하게 쓰이고 있다. 사극이나 시대상이 두드러진 영상물을 접할 때면 그 시대의 기록이 어떻게 남아 의상이며 생활모습이 저렇게 리얼하게 연출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한 나라의 역사가 그렇고, 교육사가 그렇고, 기록으로 인해 시대의 맥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록의 힘은 대단하다.

해가 바뀌어 새 다이어리를 갖게 될 때는 기쁨과 희망을 느끼게 된다. 첫 페이지를 열고 1년간 계획이며 화두를 기록할 때도 설레임이 일어서 학창시절 노트를 처음 사서 첫 글자를 쓰는 마음이 된다.

지금은 '손 글씨', '손 편지'란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지만 나는 이런 어휘가 새삼스럽게 생각되는 세대다. 뾰족한 펜촉으로 청색 잉크를 찍어서 글씨를 쓰던 시절, 잉크가 손에 묻어있거나 엎질렀던 기억에도 불구하고 연락 안 되는 친구들의 글씨체가 생각나기도 할 정도로 글씨의 비중이 컸다. 나중에 쓰기 편한 볼펜이 들어왔지만 난 펜글씨에 대한 미련이 많았고 두툼한 노트를 좋아했다. 흰 노트의 매력에 끌렸던 탓인지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 굳은살 생긴 것이 아직도 남아있어 버릇처럼 굳은살을 만져볼 때가 있다.

책꽂이에 꽂힌 크고 작은 다이어리들 속엔 몇 장 쓰다 만 것도 있고, 오래되어 속지가 변질된 것도 있다. 버리려고 하다가도 못 버리고 간혹 그 메모들을 뒤적이다가 필요한 자료를 발견하곤 한다.

요즘엔 기록의 의미를 다른 시각에서 강조하게 된다.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의 안전지도며 상담이며 생활지도 등을 기록으로 남기라고, 선생님이 쓰는 교무수첩을 몇 년간은 버리지 말고 보관하라고 당부 한다. '혹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경우,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런 연유로 이렇게 된 일이라고 명백하게 제시해야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이다.그러면서 생각한다. '증거자료를 위한 기록을 당부하고 있구나'하고.




/김호숙 산남초 교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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