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으로 삼는 벼는 2모작이 보통이고 3모작까지도 가능하니 우리처럼 힘들게 농사지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가난하다. 오래 전부터 이어온 가난을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논마다 중앙에는 넓은 면적에 우리네 납골당 비슷한 조상들의 묘를 모셔 놓았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더 위하다가 굶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오래된 풍습이니 그러려니 하며 살 것이다.
벼농사 외에는 별로 눈에 띄는 농사거리가 없으니 수입이 증가할 리 없다. 그렇게 가난에 허덕인다면 서둘러 외국의 사례를 도입하여 변화를 시도할 법도 한데 '처이처이'하는 것 같다.
관광버스가 도착하는 관광지와 쇼핑점마다 떠돌이 장사꾼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 하나같이 꾀죄죄하고 비굴하다. 이상한 물건을 3개에 천 원이라고 했다가 금방 5개로 올리다가는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면 10개에 팔기도 한다.
거지와 다름없는 그들을 보며 그렇게 해서야 언제 우리처럼 가난의 질곡을 벗을까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가난해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빛나는 눈동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처이처이'하는 흐릿한 눈동자만 보였다.
맥아더 장군이 6·25전쟁 후 우리나라를 보며 '이 나라가 회복하려면 적어도 200년은 걸릴 것' 이라고 잘못된 예측을 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했지만 그들은 우리와 달리 너무나 당연하게 '처이처이'하는 것 같았다.
더위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생존경쟁에서 닳고 닳은 우리 일행도 이렇게 더워서 허덕이는데 평생을 이곳에서 사는 이들은 오죽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늘 이 곳에 살다보면 이미 적응되지 않았을까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은 자연에 적응하게 마련이고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살아보지도 않은 사막의 나라에 가서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처이처이'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의 강한 동기가 부족한 것이다. 또한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을 도탄에서 구하고자 하는 강력한 책임감과 봉사심으로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은 하노이 시에 와서 더욱 굳어졌다. 우뚝우뚝 솟아 있는 빌딩들은 대부분 외국인의 소유였다. 그 첨단 빌딩 속에서 그들은 노예처럼 일하고 있다. 그 곳에 들어가지도 못한 사람들은 시골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비참한 모습으로 동냥하며 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야 가능하다. 자기를 희생하며 국가를 생각하는 지도자가 없으면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발전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애쓴 지도자들에게 감사했다. 눈부신 경제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근로자들에게 고마웠다.
사사건건 트집 잡고 험담하는 우리나라의 일부 이익단체들을 베트남에 살다 오게 했으면 좋겠다. 떼법으로 무장하고 지도자의 권위를 무시하며 제 맘대로 하는 이들도 같이 보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발전을 감사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예 거기서 살게 했으면 참 좋겠다.
/이진영 매포초 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