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달러화 지속 예상 … 가격경쟁력 하락 우려

수출이 주력인 우리 기업의 특성상 미국 달러화의 가치 하락은 곧바로 수익성 하락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환헤지나 결제통화의 다변화 등 단기대책에서 현지생산 확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등 중장기 대책에 이르기까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환율하락의 속도가 워낙 빨라 이 같은 대책은 한계가 분명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환투기 세력의 작전에 따른 비정상적이고 급격한 하락만이라도 억제할 수 있는 정부대책이 나와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 환율하락 손실 '눈덩이' = 수출 비중이 80%를 넘는 삼성전자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영업이익이 3천억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tv와 휴대전화 등 디지털 가전 제품의 경우 최근 달러화와엔화 환율이 동시에 내려가고 있어 가격 경쟁력 하락이 우려되고 있다.

역시 해외판매 비중이 70%를 넘는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1천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달러 약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현대.기아차로서는 우선 수출 채산성 및 수익성 악화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이어 판매가격에 대한 상승 압박을 받게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속적인 환율 하락으로 채산성 악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업이 53%로나타났으며 이들이 채산성 유지를 위해 감내할 수 있는 환율 수준으로는 '900원 이상'을 꼽은 기업이 76%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기업이 이미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다.

대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무역협회가 236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중소기업들은 '환율하락으로 인해 수출실적이 연초계획에 미치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56.4%로 대기업의 39.5%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식수생성장치를 제조하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환율하락으로 수출 제품 가격 가치는 떨어진 반면 원부자재 가격 인상으로 생산원가는 올라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수출을 해서 마진이 남지 않아 내수 쪽에 주력할까 한다"고 말했다.

정밀금형 제품을 생산하는 또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도 "최근 환율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중국업체와의 경쟁으로 제품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외주제품을 자체 생산하는 등 원가를 절감하는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원 현오석 원장은 "지속적인 환율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려할만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미국과 일본 등 환율하락의 직접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으로의 수출이 줄어들고 있는 점과 중소기업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는 점을 우려사항으로 들었다.

현 원장은 "환손실을 전가, 회피할 수 있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은 별다른수단이 없이 때문에 환율하락의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 기업들의 안간힘 = 삼성전자는 환매칭과 거래통화 다변화 등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환율이 800원으로 내려가도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도록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용 절감과 공급망 관리 강화, 거래통화 다변화 등을 포함한 근본적 경영혁신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lg전자도 환율의 800원대 진입을 염두에 두고 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헤지 비율(0~40%)을 조정하고, 수입 및 수출의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고 있다.

lg전자는 이와 함께 수출과 차입금에 대한 환율 익스포져(exposer)를 축소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달러 중심의 결제 통화를 유로화나 기타 통화로 점차 다변화하고, 장기적으로 현지생산 확대, 현지 밀착형 경영 등을 통해 환 위험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원가절감을 통한 체질개선도 병행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올해 원가절감 목표로 1조원과 1조8천억원을 설정해 놓은 상태다.

아울러 중대형 세단 및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같은 고부가가치 차종에 대한 판매에 주력, 환율 변동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구축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유럽선사로부터 수주한 fpso(부유식 원유생산 저장설비) 대금을 전액 원화로 받기로 했고 2월 노르웨이에서 수주한 선박 대금 50%를 원화로 받기로 하는 등 원화 결제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lg화학은 매출 절반 이상이 외화로 발생하고 이중 달러 비중이 9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환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고강도 비용 절감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2004년 초부터는 환관리 시스템을 운영하며 연간 환손실을 선제 관리하고 있다. 매년 환 관리 목표를 정하고 최대 환차손을 예상한 뒤 목표치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선물환과 옵션 등 파생상품을 활용해 위험을 줄이고 있다.

이밖에 효성은 유로화 결제 비중을 높이고 있고 코오롱도 원재료를 구매할 때 달러로 결제해서 수출에서 발생하는 환차손을 자동헤지하고 있으며 결제시 달러화 보다 유로화 등 기타 통화비중을 높이고 있다.

◇ 앞으로도 상황은 비관적.."정부가 나서야"= 기업들은 '약(弱)달러' 추세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런 경우에 대비해 극한의 경비절감과 긴축대책을 마련해두고 있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이고도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lg그룹은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시 기준 환율을 올해 평균(예상치) 931원에 비해1.7% 떨어진 915원으로 잡았으나 lg전자 등 수출비중이 높은 계열사들은 900원 이하를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삼성그룹 역시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환율 925원이 지금까지의 공식적인 기준이지만 계열사들은 이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환율을 바탕으로 내년 사업계획을 작성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조사에서는 '환율하락 추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 기업이 47%로 '연말까지 하락 후 안정화'(33%)하거나 '현수준에서 안정화'(20%)할 것이라는 기업보다 많았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도 불사해 환율시장을 안정시켜 줄 것을 바라고 있으며 최소한 환율하락의 속도만이라도 늦춰 줄 것을 바라고 있다.

무협은 최근 정부에 제출한 건의문에서 단기외채 유입을 막기 위해 향후 기준금리 결정시 환율문제를 최우선시해야 하며 환율 동향에 따라 금리 하향조정도 검토할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한국은행의 외환스와프 시장 개입 조치도 필요시 지속적으로 시행해 장기적으로 단기외채 유입을 억제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무협은 건의했다. 무협은 이와 함께 △외환거래상 각종 규제 완화 △해외 m&a 활성화 지원책 마련△해외펀드 투자에 대한 한시적 비과세 혜택 확대 △결제통화 다변화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일반기업 및 개인의 투자목적 해외부동산 취득 허용 등을 촉구했다.

현오석 원장은 "무엇보다 정부가 급속한 환율하락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시장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공식 논평을 통해 "대외환경 악화에 따른 우리 기업들의 급속한 경쟁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함과 동시에 수출금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등 조치를 통해 환율안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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