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식물학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의 어린 아들이 우쭐한 마음에 담임 선생님 말씀을 잘 듣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이 식물학자가 아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나갔다. 아이가 어떤 야생화를 발견하고는 그 이름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는 잘 모르겠는데, 이 꽃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생님께 여쭤 보자."

다음 날 선생님은 그 꽃의 이름과 꽃말과 생장 환경까지 줄줄이 설명해 주었고, 아이는 그 다음부터 선생님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짐작하는 대로 아이의 아빠가 선생님에게 미리 연락을 해서 꽃에 대해 설명해 준 것이다. 평소에 선생님의 권위를 존경할 줄 모르는 아이의 태도를 걱정하던 아빠의 지혜였다.

교육은 다른 국가통치행위와 현저히 다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매우 전문적인 교사와 매우 미성숙한 학생이 만나기 때문에 교사의 권위가 서지 않으면 도저히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이 교사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부터 교육은 거절된다. 하물며 학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담임교사를 흉보면 그 아이가 어찌 교사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으며, 그래가지고서야 어찌 공부 잘 하기를 바랄 수 있는가?

엊저녁엔 실컷 흉 봐 놓고 아침에 아이가 등교할 때는 붙들고 한다는 말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공부 해라.' 이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아이는 헷갈린다.

옛날엔 학부모들이 현명했다. 무식하고 가난했어도 제 자식을 가르쳐 주는 담임교사를 존중하고 믿고 맡겼다. 더러 교사의 흠이 있어도 아이들이 힘들게 해서 그렇다고 오히려 격려해 주었다. 그러니까 힘 있게 가르쳤고 사람을 만들었고 이만큼 살게 되었다.

좀 배웠다는 요즘 학부모 중 영악한 일부는 제 아이 담임교사를 가르치려 든다. 아이 앞에서 가차없이 욕하고 심지어는 멱살을 잡고 폭행도 한다. 그리곤 교육에 올인 했다고 한다.

총각 교사 시절, 자기 못난 자식의 담임이라며 정중히 집으로 안내하고는 굳이 아랫목에 앉혀 놓고 아이에게 절을 시키던 분, 배운 것 없고 가난하여 꾀죄죄했지만 아들뻘 되는 담임교사에게 그저 자기 자식 사람 만들어 달라고 하시던 그 분!

교사의 권위가 뿌듯했다. 교사된 게 참 행복했다. 그게 겨우 30년 전이다.

교사도 노동자일 뿐이라고 우겨서 그 권위를 모두 무너지게 한 사람들이 안타까운 만큼 그 분이 보고 싶다. 담임교사에게 미리 자기의 지식을 알려 주지는 못할망정 어설픈 교육관으로 교육전문가를 능멸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서글픈 만큼 그 분이 보고 싶다.

하도 막무가내로 우기는 학부모 대하기가 힘들어서, 하도 제 부모 닮아 대드는 아이가 어이없어서 명퇴 신청이 급증하는 요즘, 정말 그 분이 그립다!



/이진영 매포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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